루터의 교육개혁 이야기<4> 루터의 결혼, 루터와 카타리나

루터의 교육개혁 이야기<4> 루터의 결혼, 루터와 카타리나

[ 기독교교육이야기 ]

양금희 교수
2017년 03월 28일(화) 15:25

루터를 개신교 교육의 아버지로 보는 것은 그가 교회와 학교의 교육을 개혁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와 나란히 가정을 가장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서 재평가하면서 가정, 교회, 학교를 모두 아우르는 개신교 기독교교육 생태계를 재정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가 가정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장으로서 재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 자신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교육적 경험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다른 개신교 목사들에게도 결혼을 권했고, 멜란히톤이나 츠빙글리와 같은 다른 개혁자들보다 늦게 42살이 되던 해인 1525년 전직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을 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고 그로부터 6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 카타리나와의 결혼생활은 루터에게 왜 가정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 되어야 하는지, 왜 사랑이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지를 깨우쳐 주는 경험적 기반이 되었다.

그의 부인 카타리나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5살 때에 어머니를 잃고 수도원에 맡겨져 그곳에서 성장하게 된다. 당시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아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수도원에서 그녀는 글을 배우고, 고전적 서적들을 접하였으며, 규칙적이고 절제된 삶의 훈련과, 자연치유 약을 다루거나 자급자족하는 경제적 활동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는 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진취적이고 자의식이 강했던 카타리나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수도원 담장 안에서만 보내기를 원치 않았고, 다른 11명의 수녀와 함께 수도원을 탈출하여 비텐베르크로 오게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루터와 결혼을 하게 된다.

부인 카타리나는 루터보다 16살이 젊었지만, 오랜 수도사 생활로 인해 경제관념이 전혀 없던 루터를 대신해 대가족 살림을 꾸리고, 집을 개방해 루터가 가르쳤던 비텐베르크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운영하였고, 가내 맥주제조장도 운영하면서 경제를 꾸려갔다. 루터의 집은 루터의 학생 뿐만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이 찾아와 함께 기거하던 곳으로서 종교개혁의 본거지였다고 할 수 있다. 카타리나는 여장부처럼 가정의 모든 일을 도맡아함으로써 루터가 종교개혁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

루터는 그의 집에 모여드는 수 많은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며, 때때로 중요한 신학적 사고를 표현하기도 하였고, 또 가정과 교육에 관한 말들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탁상담화'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탁상담화'에는 루터가 얼마나 카타리나를 사랑했는지를 엿보게 하는 말들도 등장한다.

그녀를 향해 '나의 갈비뼈', '비텐베르크의 샛별', '나의 주인'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하고, "밖에서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고, 집에서는 카타리나가 나의 주인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비텐베르크의 루터하우스에 들어서면 앞 마당에 루터의 동상이 아닌 카타리나의 동상이 서 있다. 루터에게 결혼과 사랑과 자녀의 경험을 선사해주고, 가정의 교육적 의미를 알게 해 준 이 집의 안주인이자 '루터의 주인'인 카타리나가 지금도 그곳에 서서 그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환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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