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와 '결자해지'

'줄탁동시'와 '결자해지'

[ 논단 ]

손학중 장로
2017년 01월 12일(목) 08:28

손학중 장로
부총회장ㆍ영서교회
 

'줄탁동시(   啄同時)'는 '병아리가 부화할 때 어미닭은 밖에서 병아리는 안에서 동시에 쪼아 댄다'는 의미로, 서로 합심하여 일을 잘 이뤄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고, '결자해지(結者解之)'는 '사건 전말의 단초를 제공한 자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교단 교회, 나아가 한국교회 안에서 흔히 중직이라고 하는 항존직(장로, 안수집사, 권사)들이 의견과 뜻이 서로 맞지 않아 마음의 상처를 입고 가슴 앓이를 하다가 급기야 교회를 떠나는 사태를 종종 보곤 한다. 최근 필자가 목격한 주위 몇 교회의 안타까운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담임목사의 목회 스타일이 뜻에 맞지 않는다고 장로가 사임하는가 하면, 정책당회에서 힘 있는 자리에 가지 못했다고 부부가 함께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은퇴목사 예우를 논하던 중 '더 많이 주자'는 자신들의 뜻이 받아들여 지지 않자 장로 3명이 사임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례, 안수집사끼리 사소한 문제로 싸워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권사끼리 지역 봉사를 하다가 자신들의 뜻이 받아 들여 지지 않자 말도 없이 나오지 않는 사례 등 너무 많은 은혜롭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 일들을 문제시 하려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서로가 화해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아름답게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위 사례에서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타당성과 당위성의 논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장자교단에서 항존직으로 봉사하면서 기본적인 마음가짐, 자세, 역할을 몇 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항존직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헌신하는 일이야 말로 어쩌면 담임목사를 대신해 교회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일이므로, 담임목사는 항존직을 보다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돌보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의 생각이다. 항존직의 사전적 의미는 '항상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는 직책'이라고 쓰여 있다. 하나님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항존직이라는 청지기를 세워 교회의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이므로, 항존직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존귀한 직책임이 틀림없다. 그것도 세례교인들이 공동의회에서 투표로 선출한 중요한 자리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하다 보면 항존직끼리 종종 마찰을 빚는 수가 있으며 서로가 상처를 받아 마음을 풀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일이 다수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럴 경우에 담임목사가 중립을 잘 지키며 적극적으로 중재자 또는 해결자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담임목사가 '그러다가 나갈테면 나가라는 식'으로 방관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항존직은 체념하고 교회를 떠나 평생 앙금을 풀지 못하게 된다. 지교회 입장에서 그 얼마나 큰 손실이며 아릅답지 못하고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사태인가? 

의견 충돌과 다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때 분쟁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이 먼저 '미안합니다, 제가 기도가 부족해서 그랬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말로 사과할 때 받아 주지 않을 항존직이 어디 있겠는가? 쌓였던 앙금도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왜 그리 사과에 인색한지 모르겠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툼이 생기면 회식을 하면서라도 푼다는 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으로 풀어야 하겠는가. 필자는 기도가 열쇠라고 생각한다. 부디 새해에는 줄탁동시하는 협력적 배려와 피차의 보살핌 그리고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내는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한해를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올해는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지 5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임을 잊지 말고, 제101회기 총회가 제시한 '다시 거룩한 교회로!'라는 주제를 실천하므로 한국교회가 갱신하는 일에 각 교회 항존직들이 앞장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뤄가기를 소망한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