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국가 정치 (5)기독교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

한국교회와 국가 정치 (5)기독교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

[ 특집 ]

김형민 교수
2017년 01월 03일(화) 15:28

김형민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인간은 정치적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이웃 피조물과 창조의 공간을 함께 나누며 산다. 더불어 살아야하는 인간에게 정치적인 것 외에 다른 실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와 무관하게 살겠다는 결단도 결국은 정치적 견해의 하나일 뿐이다. 신앙과 교회의 역사도 정치적 결단과 함께 변화하였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탈출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세속적 왕권국가를 형성해가는 그들의 정치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정치적 판결이었고, 바울(롬 13장)과 요한(계 13장)은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견지해야 할 국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였다. 로마의 박해와 그리스도교 공인,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신국론, 칼뱅의 저항권, 근대의 종교자유운동과 정치적 독재체제들에 대한 교회의 저항으로부터 한국교회의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는 정치의 역사와 함께 움직여 왔다.

그리스도교와 정치의 관계에 관해 논의하면서 '정치적인 것'이 무엇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세 가지 차원의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헌법이나 법질서를 통한 정치적 행위이고, 둘째는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규범적 목적행위이며, 셋째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관심들을 중재하고 합의를 도출해가는 과정이다. 이 세 가지 특징 모두 그리스도교 정치신학과 윤리의 주된 주제이지만 그 중에서도 두 번째 과제가 특별히 중요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는 오랫동안 국가사회 속에서 가치창출의 기능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회는 각 시대와 상황 속에서 복음에 근거해 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시해왔다. 실제적으로 이는 사회와 문화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오랫동안 서구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렇다고 모든 서구의 정치문화가 그리스도교적인 가치에 근거해 진실한 정치이념과 체제를 성취했다는 말은 아니다. 진실한 그리스도교의 정치는 진실한 정치체제만큼이나 찾기 어렵다. 그리스도교적 정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과 전쟁과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테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오류와 폭력의 혼합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적 정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실천함에 있어 현대사회의 기본적 구조와 맥락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적 정치'란 무엇인가? 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사람의 말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결단행위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와 정치의 관계를 결정하는 신앙의 기초이다. 하나님은 첫 계명을 통해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군가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절대화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굴종을 요구한다면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제일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에는 신정정치, 근본주의, 마르크스주의, 신자유주의와 같은 여러 유형의 '종교적 정치'가 자신의 권력욕을 교묘하게 미화하며 감추고 있다. 정치적 질서는 진리의 질서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는 자유의 질서이다. 그러나 언제나 방종과 무질서의 위험을 안고 있는 깨어지기 쉬운 자유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은 이와 같은 정치적 위험성을 경고하고 정치적 절대화를 상대화시키는 비판적 능력이다. 결코 신앙은 정치적 현실을 신앙의 이름으로 합법화하지 않는다.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교회가 정치적 합의와 조정에 나서기도 하지만, 인간의 정치적 요구와 가치는 본회퍼의 말로 표현하자면 모두 '궁극이전'의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궁극적인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정치를 비신화화한다. 

그렇다면 파편화된 다원적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체제와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두 단계만을 간략하게 제시한다. 먼저 교회는 복음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제시해야 하며 다음으로 이러한 가치개념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구조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전자가 교회의 윤리적 과제라면 후자는 변혁의 과제라고 하겠다. 그러면 정치적 삶의 기초가 되는 윤리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동안 교회는 그리스도교 사회윤리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 평화, 창조의 보존 등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날 이 모든 요구를 포괄하는 보다 높은 가치개념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인권'이다. 인권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골 1:15; 고후 4:4)에 힘입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엄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 1948년 유엔총회가 역사적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함으로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언어요 정치체제의 합법성을 검증하는 윤리적 기준으로 공유되었다. 그 이후 거의 모든 국가는 인권을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한 전제요 목적이념으로 수용하였다. 정치는 각 사람을 법적 주체로 존중하고 침해할 수 없는 인간존엄성을 보호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교회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교회들이 인권에 대한 서로 다른 신학적 전통과 해석을 가지고 있지만 인권을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신앙적 삶의 가치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교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그리스도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두 번째 질문, 다시 말해 교회의 변혁적 과제에 대한 응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종교자유의 기본권을 법치국가의 원리로 수용하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 결단과 행동은 여러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교 윤리학은 교회의 정치적 과제와 역할을 정치신학보다는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공공신학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정치와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서 숙고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여러 시민단체의 한 일원으로 공론장에 참여한다. 교회의 정치적 행위가 중립적일 수만은 없지만 결코 다른 사회체제를 지배하려는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세계사회의 공유가치로서 인권의 이념이 중요하다. 우리사회를 정의롭고 평화로운 곳으로 변혁해 나가야 할 교회의 정치적 책임은 모든 시민의 기본적 인권과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문화와 인권문화의 형성과정에 함께 참여함으로 가능하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평화로운 시민혁명의 시험대 앞에 서 있다.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켜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으며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분단의 현실을 아파하며 이 땅에 정의로운 평화가 실현되기를 몸과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그리스도교적 윤리의 관점에서 질문해보자면, 한국사회와 정치가 인간존엄의 가치를 지키며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변혁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소원과 기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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