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공보 기획> 치유하는교회 신동자ㆍ신동선 장로 남매

<한국기독공보 기획> 치유하는교회 신동자ㆍ신동선 장로 남매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6년 12월 12일(월) 12:57

가족구성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일가친척 모두가 기독교인이 된 애잔한 간증이 있다. 한 알의 밀알은 땅에 떨어져 새싹을 틔우고 수많은 열매를 맺었다.

영등포노회 치유하는교회 신동자ㆍ신동선 장로 남매의 가정사다.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슬프고 애통한 일을 겪었지만 '산상수훈 팔복'의 가르침처럼 위로와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한국교회에서 유일한 '한 교회 남매 시무장로'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신 장로 남매는 충남 서천군 판교면 저산리에서 8남매 중 6번째와 7번째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누나 신동자 장로는 조용하고 순종적인 소녀였고, 동생 신동선 장로는 짖궂은 장난꾸러기였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8남매 맏이가 성공을 거두자 부모와 형제를 서울로 이주시켰다. 신 장로 남매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 치유하는교회 신동자ㆍ신동선 장로 남매. 한국교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한 교회의 남매 시무장로다.

신동자 장로는 오빠의 중매로 24세 젊은 나이에 서울 화곡동 김씨 집성촌의 맏며느리로 시집왔다. 시아버지 9형제에 남편 5형제인 대가족이었다.

신동자 장로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이쁨을 받아 고생 한번 안해보다 대가족 집안의 맏며느리로 각종 대소사를 챙기려니 힘들었다"며 "한달에 쌀 3가마니 분량의 밥을 지을 정도였다. 순간순간 '나는 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20여 년 대가족을 챙기던 와중에 남편이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더니 병원 진단 결과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남편의 나이 46세였다.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신동자 장로는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남편이 투병하기 전에 수차례 전도를 받았지만 출석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유교가풍이 강한데다 교회라면 손사래를 치는 식구들에게 "교회 가서 기도하자"고 얘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동자 장로는 금식기도하며 담대함을 얻었고, 가족회의를 열어 시부모, 시동생, 자녀 등 9명을 설득해 화곡동교회(현 치유하는교회)로 데리고 가 함께 기도했다.

당시 동생 신동선 장로는 매형(신동자 장로의 남편)이 운영하던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동국대학교에 다니며 자연스럽게 불교도가 된 신동선 장로는 막연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누나가 열렬히 기도하지만 매형이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자 야속한 마음에 쉽게 영접하지 못했다.

그는 일종의 '딜'을 했다. "매형이 살면 예수님을 믿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매형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전에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공부하기 위해 읽은 성경구절이 그를 기독교인으로 이끌었다.

드디어 40세에 신동선 장로가 신앙을 얻었다. 고지식하고 완악한 고집이 꺾이니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다'고 신앙이 두터워졌다.

"매형이 투병생활을 하며 교회의 많은 분들이 복음을 전해주셔서 영접을 하여 감사한 일입니다. 당시에 저는 '하나님이 계시면 왜 살려주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애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이미 예수님이 깊이 들어와 계셨고, 매형이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신동자ㆍ신동선 장로 남매 가족. 신동자 장로 남편의 죽음으로 일가친척 모두가 기독교인이 된 사연이 있다.

확실히 한 알의 밀알이었다. 부인과 처남은 장로가 되고, 큰 딸은 목사 사모가 되고, 둘째 딸은 목사 며느리가 되고, 아들은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시동생은 구의회 의장 출신으로 안수집사가 됐다.

남매는 믿음이 견고해지면서 각자 여전도회와 남선교회 활동을 하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금처럼 세상속에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맛을 내고 녹아들며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알렸다.

신동자 장로는 "내가 가족의 '첫 믿음'이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전도가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주변 전도대상자 심방도 열심히 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계속 복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신동선 장로는 "건축업을 하며 주일날 사업일정을 접는게 쉽지 않았지만 유혹을 뿌리쳤고, 건축업의 노무자들이 일을 하며 고사를 강권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예배문화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결국 이겨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동자 장로는 시댁과 친정 식구들을 모두 교회로 인도했다. 신 장로의 시부는 76세에 영접해 88세에 집사로 별세하고, 시모는 70세에 영접해 93세에 명예권사로 별세했다.

신동자 장로는 "남편이 하나님 곁으로 가면서 영적전쟁이 심했다. 시댁 식구들이 '예수님 믿으면 산다더니 죽었다'며 반발이 심했다"며 "그러면서도 계속 복음을 전했고, 남편의 사업정리는 물론 빈자리인 장남역할까지 모두 감당하며 식구들을 교회로 인도했다"고 설명했다.

▲ 치유하는교회 김의식 담임목사와 함께 한 남매. 이들 남매는 믿음을 가진 후 누구보다 봉사와 선교에 열심을 보였다.

'충성된 일꾼'으로 살던 남매는 2007년 장로 장립을 받았다. 신동선 장로는 서리집사에서 바로 장로안수를 받았다.

치유하는교회 김의식 목사는 "남매가 한결같이 헌신적으로 봉사한다. 사실 남매가 한 교회에서 장로가 되기 어려운데 그만큼 성도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우니 가능했다"며 "예수님을 믿는 본을 보이신 분들이다. 특히 주일성수와 평소 기도생활에 철저한 분들이다. 교역자들에게도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계연합과 자선활동에도 물질과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놓고 있다. 현재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계와 전국장로회연합회 부회장 등으로 연합활동을 하고 있는 신동자 장로는 이외에도 유아교육 전공을 살려 교육선교와 다문화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남편의 목숨과 바꾼 신앙이기에 오직 예수님 믿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덤의 인생 주신 것 감사하며 시무장로 은퇴 후에는 이제껏 다 깨닫지 못한 것 집중하며 살고 싶어요."

그런가 하면, 신동선 장로는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 가교역할을 하며 후배들의 연합회 활동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들 남매는 성경 통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비전이 있다. 성경 통독이 일상인 신동자 장로는 신앙을 가진 후 3년만에 필사를 마쳤고, 현재 영어성경 필사를 진행 중에 있다.

신동자 장로는 "말씀을 항상 붙잡고 살아가도록 기도하고 있다"며 "가장 애착이 가는 말씀은 시편 107편 31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서로에 대한 덕담을 부탁했다.

신동자 장로는 "동생은 정확하고 아는게 많아 도움을 많이 받는다"며 "신앙이 워낙 견고해 신학을 공부하라고 권했을 정도였다. 우리 집안의 제사장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마음인데, 동생이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신학공부를 하기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선 장로는 "누님은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성품이 곧은 분이다. 젊은 나이에 사별의 아픔이 있었지만 예수님 믿고 씩씩하게 여장부처럼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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