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게 하소서

그날이 오게 하소서

[ NGO칼럼 ]

김주윤 목사
2016년 11월 15일(화) 15:35

개성공단이 슬프게도 문을 닫았다. 조금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 없기에 고통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정치적 또는 경제적 시각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개성공단은 남북화해의 상징적인 장소이며 남북대화의 마지막 창구였다. 그리고 남북긴장의 완충지대이었다. 더 나아가 개성공단은 통일의 연습장이고 훈련장이었다. 개성공단에서 11년 지내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은 북한사람들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오랜 세월 서로 체제와 생활양식이 다른 곳에서 살다가 만나니 함께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어떤 남한근로자가 "통일이라고요? 여기서 잠깐 같이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영원히 같이 산다고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통일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같은 체제 속에서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동과 서도 하나 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다. 또한 북한 이탈주민들의 정착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갑작스런 통일이 가져올 후유증을 예견할 수 있다.

많은 탈북자들이 이 땅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통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에는 반드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보라.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 받은 뒤 바로 통합하지 않고 50년 특별자치구역을 선포하였다. 99년 동안 벌어진 차이를 극복하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참 지혜로운 조치라고 생각한다. 남북 분단 70년은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동안 벌어졌던 격차가 좁혀지려면 분단된 시간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개성공단은 그 존재만으로도 북한사람들에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교육해 왔다. 누구도 말한 적이 없다. 가르친 적도 없다. 그러나 공단 자체가 말하고 가르쳤다. 공장 시설이 그리고 정전이 없는 전깃불이 남한이 너희 보다 잘산다고 외치고 있었다. 남한 근로자들의 옷차림과 타고간 자동차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삶을 보면서 저들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북한 근로자가 묻는다. "선생님도 자동차가 있습니까? 왜 한민족인데 이렇게 다릅니까? 나는 자전거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성공단은 북한선교의 교두보요 전진기지였다. 개성교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물론 공개적으로 신앙 활동이나 전도를 할 수는 없었다. 개성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개성교회를 트로이 목마라고 생각했다.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시면 북한선교의 첨병으로 개성교회 교우들이 담대히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로이 목마는 아직 그곳에 있는데 그 안에 있던 믿음의 용사들은 철수를 했다.

너무 안타깝다. 주님, 개성교회가 회복되어 황무한 땅에 찬송이 울려 퍼지고 말씀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칠흑같이 어두운 북한에도 복음의 밝은 빛이 비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하시고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더 나아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주안에서 하나 되어 얼싸안고 신나는 춤을 추는 그 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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