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회 총회 주제해설 ⑤종교개혁이 지향하는 교회

101회 총회 주제해설 ⑤종교개혁이 지향하는 교회

[ 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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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5일(화) 13:41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1회 총회의 주제는 '다시 거룩한 교회로!'이다. 이 주제는 오늘의 교회 현장에 대한 진단과 방향 제시이기도 하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의 정신에 상응한다. 그 당시의 종교개혁은 동시에 양(兩) 방향으로 추진되었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과 근원으로 돌아가는 회복을 지향하였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출애굽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거룩하라'(레 19:2)고 명하였다. 이스라엘의 거룩함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하심에서 비롯된다. 레위기에는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함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났고 또 이를 통하여 모든 피조세계에도 그 거룩함이 두루 나타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2장에는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시며 "이 성전을 헐라"(19절)라고 선포하셨다.

당시 성전에 개설된 시장은 본래 먼 지방에서 온 순례자가 보다 쉽게 제물을 구하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으며, 요한복음의 성전정화사건이 벌어지던 때에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탐욕이 넘쳐났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소와 양을 파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또 돈 바꾸는 상인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었는데, 이러한 행위는 종교행위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보는 대제사장을 향한 질타였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생각했고, 예수님은 장차 부활과 더불어 세우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언급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종교행위의 중심인 성전을 언급했고, 예수님은 종교행위를 해체하고 새롭게 세우는 성전을 말씀하셨다.


구약성경 레위기와 신약성경 요한복음 2장을 잇대어 보면, 레위기의 제사(예배)가 변질되어서-예수님이 유대 땅에 사시던 때의-성전은 제사장들의 탐욕과 상인들의 잇속 챙기기로 어지러웠을 것이다. 제사에 사용될 제물이 거래상품으로 둔갑되었기에 성전은 한갓 시장으로 변질되었고, 레위기의 거룩한 제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렇게 변질된 성전, 곧 인간 탐욕과 돈의 힘이 지배하는 성전을 예수님이 채찍으로 정화하시며 "이 성전을 헐라"고 선포하셨던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교회는 구약성경 레위기의 거룩을 회복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이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성취된 그 언약이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제자에게 사랑의 계명으로 나타났고, 그 사랑 가운데서 소통과 나눔의 사건들이 일어났고, 이를 통하여 레위기의 거룩한 제사(예배)와 삶이 회복되었다.

 
요한복음 2장의 예수님 말씀과 행위인 "이 성전을 헐라"는 유럽의 종교개혁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종교개혁 이전, 중세시대의 가톨릭교회는 엄청난 권력으로 유지되던 제도(Institut)였고 그 꼭대기에는 교황이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한 유럽에서 12세기 말부터 변혁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개혁운동은 교황이 꼭대기 정점에 있는 피라미드 권력구조의 교회를 헐어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를 회복하려는 실천이었다.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M. Luther, 1483-1546)는 신약성경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칭의) 진리를 깨달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세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다. 

이 비판이 1517년 10월에 소위 '95개 조항'으로 표현되었다. 루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수도승이 된 이후에도 풀리지 않던-일어난 고뇌와 번민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계속해서 루터가 수도사와 사제로 지내온 지 13년이 되었으되 여전히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마침내 바울의 로마서 1장 17절에서 복음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의를 발견했다. 

이를 통하여 이제까지 중세시대의 이해였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철학적 개념이 마치 단단한 호두 껍데기가 망치로 박살나듯 깨어졌다. 루터가 여기에서 깨우친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의는-죄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의가 아니라-사람을 의롭다 하시는(칭의)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이제까지 처벌이 무서워 벌벌 떨던 '의'가 이제는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로 임하는 '의'가 되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서 거룩한 교회의 근원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였고, 그 다음엔 역사 속에서 유럽의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된 거룩한 교회를 찾아보았다.

구약성경 레위기를 통해 깨우친 점은, 이스라엘의 거룩함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하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셨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오심을 통해 거룩한 교회가 탄생했다. 거룩한 교회의 기반은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령의 역사로 탄생한 교회에 속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참여하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간다.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시고, 성령의 능력 속에 있는 교회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소금과 빛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언해야 한다. 그런데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마태 5:13)이라고 예수님이 경고하셨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해야 하는데, 그러나 최근 수 십 년 동안 한국 교회는 사회현실과 소통이 끊어진 채 높은 담을 쌓고서 그들만의 기독교왕국을 건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대한 공룡의 모양을 가진 교회에 대한 우려가 있는 오늘이다. 이런 교회에서는 거룩의 능력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장에 거룩한 교회의 회복이 시급하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라고 선포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이 새로이 크게 다가온다.

거룩한 교회의 회복을 교회 스스로 하기는 불가능 하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불가능함이 가능함으로' 된다는 것을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자 루터가 깨닫고 실천했던 것이다(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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