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순도 높은 신앙인' 마천세계로교회 이대길 장로

<기독공보 기획> '순도 높은 신앙인' 마천세계로교회 이대길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6년 11월 14일(월) 17:14
▲ 마천세계로교회 이대길 장로.

광야의 잡초처럼, 이름모를 들풀처럼 모진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기어코 꺾이지 않고 버텨낸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의 언약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대한 확신은 그를 순도 높은 신앙인으로 만들었다. 누구라도 엄청난 시련이 닥치면 평정심을 잃을 법하건만 그는 올무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동남노회 마천세계로교회 이대길 장로.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예비된 가장 좋은 길로 인도된다는 섭리신앙을 붙잡고 질그릇같이 쉽게 깨어지면서도 훈련이라 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 장로는 현재 경기도 분당에서 요식업을 하며 수익의 대부분을 남모르게 선교와 전도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유명 맛집이라 부를 상당히 축적할 수 있었지만 손에 남은거라곤 돈 대신 세월의 연단을 추측할 굳은살 뿐이다.

숨은 의인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당하고 사업장을 찾아가서야 대면할 수 있었다.

이대길 장로의 첫마디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지언정 영광을 가리지 않고 싶다"였다. 하나님께 철저히 사로잡힌 삶을 살아와 주변에서 간증을 권하지만 자신만 드러날까 거절해왔던 그다.

이 장로는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대전에서 제과사업을 크게 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구세군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갔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모태신앙인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친구들을 전도해 '꼬마 전도왕'으로 불렸던 그는 어쩔수 없이 고아원에 들어갔지만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도 불평이나 곁길로 빠지는 일 없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기다렸다.

"신앙심이 좋았던 부모님은 목사님을 극진히 모시고,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고, 십일조를 생활화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말씀을 목숨처럼 여기며 지키려 노력합니다."

아버지는 몸져눕고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힘들게 지내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군 제대 후에는 고향에서 페인트와 유리 공사를 하는 가게를 차리고 축산업까지 했다. 청년사업가로 큰돈을 벌고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 청년회장까지 맡았다.

이 장로는 "청년시기를 돌아보면 신명났다"며 "사업이 잘되는데다 신앙은 뜨거워 철야예배마다 밤을 샜다. 영성훈련을 제대로 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 이대길 장로의 선교동역자인 한영득 장로(명성교회)와 함께 필리핀 선교현장에서. 이 장로는 필리핀에 선교센터를 세우고 인재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보낸 상황에서 제법 많은 돈을 벌었지만 허투루 쓰지 않고 교회 연보에 내놓았다. 교회가 건축을 할 때는 집 몇채 값에 해당되는 돈을 익명으로 헌금했다.

이 장로는 "내 돈 아깝지 않고 번 돈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다만 물질을 탐하지 않으려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하나님께 무조건 내 전부를 드린다는 심정이었다"고 설명했다.

35살이 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울 마천동으로 입성해 사업을 확장했지만 참패했다. 그는 "교만이었다"고 고백했다.

"질그릇처럼 산산히 부서졌어요. 그많던 돈이 크림 녹듯이 다 녹아버렸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선교에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주식에 모든 돈을 투자했지만 완전 망했습니다."

살림살이를 누가 버린걸 줏어 사용할 정도로 밑바닥 삶이 닥쳤다. 이 때 마천세계로교회(당시 마천중앙교회) 담임이었던 박보범 목사(현재 원로)가 방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고 옷이며 이불도 갖다주는 등 헌신적으로 이 장로 가족을 살폈다.

▲ 배우자요 동역자인 부인 심계순 권사는 묵묵히 남편 이대길 장로의 선교 및 전도를 내조하고 있다.

다시 페인트와 유리 가게를 차렸지만 입에 풀칠조차 어려워 중고트럭을 구입해 계란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교를 위해 '한탕'을 꿈꾸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기는커녕 또다시 '한탕'이라는 그릇된 신앙관에 사로잡혔다.

오직 선교를 위해서는 '큰 돈'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그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더 바짝 엎드리며 물질의 많고적음이 선교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장로는 "시련이 닥쳐도 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하나님이 돌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계란장사를 정리하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 꽃가게와 수족관을 운영했다. 장사가 손에 익을 무렵 손칼국수집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처음 칼국수집을 할 때 창피해서 배달도 못다녔어요. 몇년 간은 가게 한켠에서 쪽잠을 자고 생활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 장로는 "내 인생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꼽으라면 칼국수 장사했을 때다. 그러나 그 때가 가장 영적으로 뜨거웠다. 고난도 축복이라는 말이 새삼 느껴졌다"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재정립된 시기였다"고 말했다.

현재는 분당에서 15년째 해장국집을 운영하고 있다. 배우자요 동역자인 부인 심계순 권사와 수익의 대부분을 선교에 사용하느라 자신들에게는 철저하게 인색하다.

어렵게 번 돈을 선교에 사용하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돈들어가는 변변한 취미활동도 없다.

값없이 받은 은혜를 주변에 나누고자 이 장로는 지난 몇 년간 전도에 열정을 쏟았다. 전도비용 1억원을 마련하고 지난해 교회 전도행사에서 40일 만에 911명을 전도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 이대길 장로는 마천세계로교회가 추진하는 선교사 1000명 파송 프로젝트에서 100명을 책임지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사진은 원로 박보범 목사와 담임 김광선 목사,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한 이대길 장로.

이 장로는 최근 선교동역자인 한영득 장로(명성교회)와 사재를 털어 필리핀에 '엘림세계선교재단'을 설립하고 선교센터를 통해 어린이 교육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정기적으로 필리핀에 가서 식사할 때면 인스턴트 짜장을 밥에 비벼먹는게 전부다.

이 장로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만남으로 세계 열방을 향해 복음을 증거할 일꾼들이 되기를 바라며 어린이 선교에 매진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술학교와 양계장을 지어 현지 선교대상자들의 자립기반을 만들고, 어학원과 문화대학교 설립, 웩선교 훈련장 및 선교사 교육장을 지어 지도자를 양성할 계획에 있다"고 밝혔다.

열방을 향한 복음의 경주자로서 이 장로는 최근 비전이 하나 늘었다. 마천세계로교회가 담임 김광선 목사를 필두로 선교사 1000명 파송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면서 이 가운데 100명을 본인이 책임진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선교지로 삼은 인도네시아 현황을 살피고 있다.

또한 인재 양성 차원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장학회 설립을 비전으로 두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기다림, 변화, 충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헛되지 않도록 항상 앞서가지 않으며 하나님께 물어보고 묵묵히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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