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소통 위한 장기

스마트폰, 소통 위한 장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 김용재 목사의 1318나눔talk (12)

김용재 목사
2016년 09월 27일(화) 10:10

"라면 먹으면서 컴퓨터하면 안 된다." 냄비를 들고 컴퓨터 책상 앞으로 가는 딸에게 말한다. 딸아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냄비를 들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다. 다소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돌아온 나는 생각한다. '왜 라면을 먹으면서 컴퓨터를 하면 안 되지?' 딱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딸아이에게 가서 묻는다. "왜 라면 먹으면서 컴퓨터하면 안 될까?" 잠시 생각하던 아이가 대답한다. "라면의 맛을 만끽할 수 없으니까?"같이 배시시 웃는다.

그렇다. 우리도 모른다. 인터넷이 인류에 등장한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더 그렇다. 우리도 이 물건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아직 배우지 못했다. 하루에 얼마나 사용하면 인체에 해롭지 않은지, 편리해도 어떤 부분은 옛날 방식으로 하는 게 더 좋은 것인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마음은 어떤 상태가 되는지. 우리도 아직 잘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세상은 변했다. 빠르게.

기업은 모든 기술력을 동원해서 손에 착착 감기는 스마트폰을 제작하고, 정부는 기업의 기술력과 상품들을 국가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정책적인 지지를 했고, 교회는 놀이 공원에서 부모 손 놓친 어린 아이처럼 눈만 껌벅껌벅 했다. 그러는 동안 모든 시민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세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심지어 유아들까지도.

특히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은 자기 몸의 일부라고 여긴다. 친한 친구들과 한 방에서 둘러앉아서 히히거리며 대화 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니 가족과 식사할 때, 혼자 공부할 때, 영화 볼 때, 운동할 때, 예배할 때,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아니 잠자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이제 스마트폰은 친구와 소통하고 세상에 공존하는데 필요한 도구, 아니 장기(臟器)가 되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으름장과 애걸의 사이에서 신음하듯 뱉는 "스마트폰 좀 그만하지"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자기 지체 중의 하나를 잘라내라는 듯이 듣고는 짜증을 낸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에 몰입한 아이의 뇌는 폭탄주나 마약에 취한 어른의 뇌와 같아진다고 한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며 우울감에 빠져들게 된단다.

이제 겸허히 돌아보아야 한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미성숙한 선택을. 우리들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점점 중독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과 이 물건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세연 대표ㆍ숲속샘터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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