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회 총회 장소 '안산', 그 장소적 의미는?

101회 총회 장소 '안산', 그 장소적 의미는?

[ 교단 ] '다문화', '세월호'로 상징되는 '안산', 소수자와 고통받는 자를 섬기라는 시대의 요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6년 09월 19일(월) 10:53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를 인간이 공동체로서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 보았다.
 
'장소'는 장소를 경험하는 주체인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장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러한 점에서 2016년 교단 제101회 총회가 안산에서 열린다는 것은 그 역사성과 상징성에서 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제101회 총회가 경기도 안산의 안산제일교회(고훈 목사 시무)에서 열린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교단은 안
산에서 총회를 여는 것일까? 이번 총회 장소 '안산'은 그 지역이 주는 뚜렷한 상징으로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 상징적 키워드는 바로 '다문화'와 '세월호'이다. 이 단어는 다시 '힘 없는 소수자'와 '고통 받는 자'로 환원된다.

#다문화의 중심지

조선시대의 한 기록을 보면 이곳 정씨 가문 묘비에 백성촌(百姓村)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 가지 성을 가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옛날부터 이주민들의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근대의 역사 속에서 안산에는 몇 차례의 이주가 있었다. 1952년 섬진강 일대 댐 공사로 한 지역이 수몰되면서 전라북도에서는 안산 지역에 땅을 사서 그들을 집단 이주시켰다. 그들이 이주한 지역은 땅 1000평하고 담배 한 보루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뻘밭이었다. 이어 1970년대에는 산업지구인 반월공단 조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구로공단의 영세업체들이 안산으로 몰려왔다. 하다못해 공단 자체의 사람들도 이주한 이들인 셈이이다.
 
안산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물고기를 잡아 임금에게 거의 모든 포획량을 진상하고, 일제시대에는 철로와 역을 만드는데 동원되고, 그 만들어진 길을 통해 소금이 일본으로 반출되는 오랜 수탈의 역사를 가진 사회적 약자의 지역이었다.
 
현재 안산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수는 약 9만명(공식통계 7만5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안산 시민이 74만 명인데 약 10%가 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이주민이 200만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안산은 고도의 이주민 밀집지역인 셈이다. 안산은 원래 우리나라의 노동인구들이 집단 거주하던 곳이었지만 노동자들이 점차 빠져나가면서이주민들이 점차 유입된 곳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교계적으로 다문화 선교가 꽃핀 곳이 이곳 안산이다. 이중 안산이주민센터(센터장:박천응)는 이땅의 이주민과 1994년부터 지난 20년이 넘는 기간을 동고동락한 이주민 선교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주년을 맞아 새 건물 건축에 나서 지난 3월 6일 입당식을 가진 안산이주민센터는 교단 이주민 선교의 발원지다. 서울서남노회 산하 기관으로 교단 이주민 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이곳의 사무국장 출신들은 일산, 김포, 화성, 전주 등에서 이주민센터 소장을 하고 있고, 요르단, 동북아, 캄보디아에서도 선교활동을 하고 있을 정도로 이주민 사역자의 모판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안산이주민센터의 주도로 국가정책도 많이 만들어졌다. 고용허가제도, 다문화가정지원법, 거주외국인지원조례 등이 그 열매다. 경기도로부터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 유치를 이뤄냈고, 안산시에 다문화 전담 공무원제도도 만들게 했다. 또한, 250여 시민단체와 함께 국내에 있는 모든 이주민 자녀(불법 이주민 포함)에게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안산이주민센터는 이주민 밀집 지역에서 이주민과 한국인의 갈등이 고조되자 1997년 '국경없는 마을'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요즘의 마을만들기, 사회적 기업 운동 등이 포함된 선구적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번 돈을 헛되이 쓰지 않고 본국에 돌아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공동체를 시작했고, 이들이 차곡차곡 자본금을 모을 수 있도록 이주노동자 신용협동조합도 시작했다. 또한, 주말에만 짬을 낼 수 있는 이주민들의 특성상 이 지역의 은행들은 주일에도 문을 열게 유도했다. 지금도 안산 지역의 15개 은행은 주일날에도 영업을 한다.
 
1999년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종량제의 개념을 모르는 이주민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례가 많아 한국인들과 갈등을 빚자 안산이주민센터는 주민과 이주민들과의 만남을 주선, 원곡본동 사무소 동장과 주민자치위원들과 함께 토론을 했다. 한달에 두번 정도 위원들과 외국인들이 청소를 같이했다.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한달에 두번 청소하고 같이 밥을 먹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연 이들은 원곡본동에서 이주민과 한국인들이 같이 모여 이 동네의 문제를 같이 해결을 하기 시작했다.
 
박천응 목사는 "교회는 교인과 세상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수몰되어 갈 곳 없이 뻘에서 농사지어 살아야 했던 사람들, 밀려서 온 사람들, 반월공단으로 쫓겨온 영세 노동자들, 한국사람들이 빠져 나간 곳에 다시 공장을 돌아가게 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이웃으로 껴안아야 교회가 산다"며 "지금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힘없는 사람들, 가난한 자, 소수자들이다. 교회는 더 낮은 자리로 가야 한다. 새로운 생명의 소리와 외침의 소리를 들을 때 교회의 미래가 있다"고 충고했다.

#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아이들의 도시

2년 전 4월 16일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아무 죄 없는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충격, 집단 우울증을 겪었던 2년 전의 그 허망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잊을 수 없다. 기성세대의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 때문에 죽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잊지 않을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이고 되뇌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그때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진상규명은 속시원히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자식 잃은 부모들의 마음에는 씻을 수 없는 깊은 한이 남았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안산시 합동분향소에는 요즘에도 하루 평균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300여 명까지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3시까지 합동분향소를 찾은 총조문객 수는 62만7091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분향소에서는 사진 속의 꽃다운 아이들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밑에는 부모와 친구들이 생일날 갖다 놓은 메시지와 꽃,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들이지만 이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 이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는 분향 후 유가족대기실을 찾아 단원고 7반 이정인 군의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직도 미수습자가 9명이고, 의혹도 안풀린 상태에서 계속해서 분향소를 찾는 분들이 있는데 상주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2반 민지 아빠와 계속 이곳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단원고 희생자들의 부모들은 반별로 밤에 당직을 서고 있고, 매일 10명 정도씩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정인 아빠는 "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는 우리 정인이가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를 배우고 놀던 놀던 곳"이라며 "추석이 다가오니까 더 생각난다. 고향이 전주라 정인이랑 같이 내려갔었는데 이번 추석에는 이곳에서 정인이랑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인 아빠도 과거 교회에 출석했던 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기독교인들에 대한 실망 때문에 완전히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그는 "교회에 가장 실망한 부분이 내가 아픈 부분을 왜 같이 외쳐주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었다"며 "교회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우리의 아픔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솔직히 단원고 부모 중 기독교인 10중 8, 9는 신앙을 내려놓게 됐다"며 "지금이라도 교회가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아픈 우리와 함께 서있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현재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명료하게 두 가지다. '진상규명'과 '온전한 인양'이 그것. 정인 군 아버지는 "교회가 기도만 해주는 곳이 아닌 같이 외치는 자가 되어달라"며,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자식을 잃은 이들은 이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의 가벼운 빈말에 엄청나게 큰 상처받는다는 것도 기억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안산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양이 된 학생들을 추모하고자 안산 단원고 희생자들의 교실을 '기억의 교실'로 남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유가족과 재학생간의 의견대립 끝에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옮겨져 2년 뒤 설립 예정인 '4ㆍ16 안전교육시설'에 복원될 예정이다.
 
안산에서 총회를 여는 우리 교단의 총대들과 교인들만이라도 2년 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그 약속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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