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로교, 정체성을 말하다 (4)바른 질서 위한 수단 '권징ㆍ치리'

한국 장로교, 정체성을 말하다 (4)바른 질서 위한 수단 '권징ㆍ치리'

[ 특집 ] 권징, 거룩함 지켜내는 도구

최윤배 교수
2016년 08월 30일(화) 13:46

최윤배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ㆍ조직신학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위한 권징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국민의 관심이 가장 높은 분야는 '경제'에 이어 '정치' 분야라고 한다. 일반 사회와 국가라는 '세상(세속) 정치'에 대한 국민의 지대한 관심은 때로는 실망해 부정적으로, 때로는 기대감으로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기독교회사에서 일부 기독교 종파는 정부나 국가가 하나님을 대적(對敵)하는 것으로 이해해 정부나 국가를 완전히 무시했다. 장로교회는 정부나 국가를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 질서의 영역으로 이해해, 때로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정부나 국가에 대해 협조적이면서도, 때로는 악한 정부나 국가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했다. 국어사전은 '정치(政治)'를 '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및 교회와 관련된 '교회 정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항간에 '그 목사는 지극히 정치적이다'라든지, '그 장로는 지극히 정치적이다'라는 말 속에 '교회 정치'가 매우 부정적으로 이해된 나머지 정치에 관심하거나 정치에 관련된 목회자나 성도는 '지극히 세속주의적이며, 거룩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장로교회 입장에서 과연 '교회 정치'는 이처럼 부정적으로만 이해돼야하는가? 세상 정치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론들이 있듯이 교회 정치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장로교회의 정치에 대해 살펴보기 전, 먼저 교회 정치에 대한 몇 가지 견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17세기 중엽 영국의 퀘이커교도(Quakers)는 모든 교회 정치를 원리상 거부했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외형적인 교회의 형성은 필연적으로 부패하여 기독교 정신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며, 교회의 외형적 정치제도는 신적 측면을 희생시키고, 인간적 요소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둘째, 에라투스(Eratus, 1524~1583)를 따르는 에라투스주의자들은 교회는 국가가 제정한 법규에 따라 존재하며, 형성된 일종의 사회로 간주한다. 교회의 직원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자들인데, 정부나 국가의 지도자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다스릴 권한이나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교회를 치리하고, 권징을 시행하고, 심지어 파문(破門)을 선고하는 것도 국가에 위임된 기능이다. 교회의 견책은 그 시행이 교회의 합법적인 직원들에게 위임된 경우라 할지라도 국가나 정부가 주는 형벌이다. 셋째, 감독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운영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고위 성직자들 또는 감독들에게 위임하셨으며, 이 감독들은 구별되고, 독립적이며, 무제한으로 계속할 수 있는 성직으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이 교회 정치제도에서 신자들의 공동체는 교회 정치에 절대로 참여하지 못한다. 

교회사에서는 초기에 로마(천주)교회가 이 같은 정치 제도를 채택했다. 영국에서는 이 같은 정치 제도가 에라투스주의 정치제도와 결합되어 나타났다. 넷째, 로마(천주)교회의 교황정치제도는 감독제도의 논리적 귀결이다. 로마(천주)교회의 제도는 자신들의 교회 안에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포함돼 있으며, 특별히 사도들 가운데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베드로의 후계자가 자신들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들 가운데 있는 베드로의 후계자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대리자가 되는 셈이다. 이 교황 밑에 성직자들이 계층구조적인 질서를 통해 서열화돼 있다. 신자들은 교회 정치에 대해 발언권이 거의 전무하다. 다섯째, 회중파 또는 회중교회제도는 소위 독립교회의 제도로 부를 수 있다. 이 제도에 의하면, 교회 또는 회중은 독립된 완전한 교회이다. 이 같은 교회에서 교회의 치리권은 독점적으로 자신들의 일을 규정할 수 있는 교회의 회원들에게 있다. 직원들은 단지 지교회에서 가르치고, 교회의 제반사를 관리하도록 임명되었을 뿐, 교회의 회원으로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다스릴 권한이 전혀 없다. 필요할 경우,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여러 교회들이 서로 연합하여 교회 회의나 지회나 지방회(地方會)를 구성할 수는 있으나, 이 연합체의 결정 사항은 권고적이거나 선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교회에 법적인(교회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정치제도는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발전했다. 국가교회를 형성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는 국가의 통수권자가 교회의 수장의 역할을 했고,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에 따라서 국가로부터 독립한 자유(自由) 개혁교회와 자유 장로교회에서는 교회 자체가 독립적인 교회정치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모두, 교회 정치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허락하신 합법적인 질서, 곧 '하나님의 질서(the order of God; ordo Dei)'에 속한다. 우리 교단은 정교분리 원칙에 입각해, 자유 장로교회에 속한다. 또 두 장로설에 기초해 목사(설교와 치리를 겸하는 자)와 장로(치리만 하는 자)로 구성되는 당회, 노회, 총회라는 치리회(治理會)를 가지고 있다. 각급 치리회는 고유한 특권이 있으나 순차대로 상급치리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칼뱅은 교회의 권위를 교리, 입법, 재판에 관한 권위로 구별하고, 권징을 재판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대체로 칼뱅과 자유 장로교회 전통을 따라, 교단의 '헌법'은 크게 네 가지 내용, 곧 교리, 정치, 권징, 예배와 예식을 담고 있다. 헌법의 내용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표준으로, 구속사와 교회 속에서 성령의 역사(役事)에 대한 개방성을 가지고 제정돼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의 내용은 항상 성경에 종속되는 동시에 성경의 내용과 정신을 올바르게 반영해야 한다. '헌법'은 '하나님의 질서'로서의 '교회 정치'를 올바르게 구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과 도구와 방법이다. 치리회를 중심으로 갈등은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으며, 교회가 제정한 '헌법'은 성경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므로, 부족한 부분은 치리회를 통해 개정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로서의 헌법은 항상 '교회 정치'로서 최대한 존중돼고, 실천돼야 한다. 한국 장로교회의 '교회 정치'를 중심으로 가끔 덕이 되지 않는 일부 목회자와 성도의 행동과는 별도로, 일부 목회자나 일부 성도에게 가끔 발견되는 '교회 정치'에 대한 퀘이커교도적이거나 회중교회적인 사고는 반드시 지양(止揚)돼야 한다. 네덜란드의 개혁파 윤리학자 까이떼르뜨의 책 제목인 '모든 것이 정치적이지만, 정치가 모든 것은 아니다(Alles is politiek, maar politiek is niet alles)'라는 말은 한국 장로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칼뱅과 마르틴 부처는 '인간의 법'에 기초해 교회와 교인을 얽어매는 로마(천주)교회의 전제적(專制的) 교회 정치와 성경에 기초한 하나님의 질서로서의 교회법을 완전히 부정하는 무질서한 급진파 종교개혁 진영을 동시에 비판함으로써, 성경에 기초한 교회 정치의 원리와 실천을 통해 교회와 성도의 참된 자유를 실현시켰다.  
마르틴 부처(Martin Bucer)는 '참된 목회학'(1538)에서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매우 강조했다. 우리 교단도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간주하지만, 칼뱅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칼뱅은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하는 '교리'를 '교회의 영혼(anima)'으로, '권징'을 '교회의 근육(힘줄, nervus)'에 비유할 만큼 '권징'을 강조했다. 칼뱅은 권징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권징의 절차와 방법에서 신중하게 접근하여 엄격주의를 배격하고, 온유한 심정과 사랑(갈 6:1; 고후 2:7~8)을 강조했다. 마르틴 부처와 칼뱅에게서 권징은 '사랑의 매'로서의 '치유와 구원의 수단'에 해당된다. 일부 기독교 교파는 권징을 선택론과 결부시켜 '출교(ex-communicatio)' 받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저주받은(anathema) 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마르틴 부처와 칼빈과 장로교회는 '출교' 조차도 선택론과 결코 결부시키지 않는 신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교단은 장로교회의 권징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잘 계승했다. 우리 교단의 헌법에 따르면,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리를 행사하며 그 법도를 시행하는 것으로써 헌법과 헌법이 위임한 제 규정 등을 위반하여 범죄한 교인과 직원 및 각 치리회를 권고하고 징계하는 것'이다. 또한 권징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위하여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자의 회개를 촉구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함'이다. 칼뱅이 권징을 강조하고, 마르틴 부처와 대부분의 세계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간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화와 성결을 통한 교회의 도덕성과 거룩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결과이다. 먼 나라에 있는 개혁교회나 장로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몇 십 년 전의 한국 장로교회의 당회록을 읽어보아도, 우리는 성경과 온유한 심정에 기초한 올바르고도 책임적인 권징을 통해 성도와 교회의 성화의 삶을 강조하고 실천함으로써 성도와 교회의 거룩성을 잘 유지해 그 당시 한국사회에 모범과 귀감이 돼 존경과 신뢰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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