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올곧게 살고 가신 김윤식 목사님

믿음으로 올곧게 살고 가신 김윤식 목사님

[ 교계 ] 故 김윤식 목사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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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29일(월) 09:51

하나님의 말씀 구약 전도서 7장 1절과 2절에서 지혜의 왕 솔로몬을 통해 주시는 말씀이 故 김윤식 목사님의 영전에서 생각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같이 됨이라. 산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라"라는 말씀이다.

김윤식 목사님은 좋은 이름을 우리 가운데 남기시고 사셨다. 믿음의 가정, 장로님의 아들로 모태신앙을 이어받은 올곧은 신앙인이었기에 초등학교 시설 일왕(천황)의 생일 기념식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고 하여 일본인 담임교사에게 심한 구타를 받으면서도 믿음을 굳게 지켰다는 일화가 있다.

목사님의 올곧은 신앙은 일본에서 중학교 과정과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연수하던 중 1945년 귀국하여 고향인 경상북도 예천의 지보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잠시 재직 중에도 주말이면 학생들에게 성경과 찬송을 가르치며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그렇게 믿음을 제일로 삼고 있던 목사님은 1949년 차태화 목사님의 부흥사경회에서 은혜를 받고 목회로 헌신할 결심으로 총회신학교에 입학한 후 1952년에 졸업하셨다. 1952년 10월 전도사로 예천읍교회에 부임하여 1953년 경안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김 목사님의 목회는 그야말로 열정과 헌신으로 가득찼다.

올곧은 신앙과 정열을 쏟은 목회자 김윤식 목사님의 이름은 전국교회의 부름으로 드디어 1971년 총회 총무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김 목사님은 장기간 총회 총무의 공석으로 어수선한 총회 행정을 바로 세우고, 교단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300교회 개척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김 목사님은 장로교단의 정체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면서도 연합운동에는 언제나 긍정적으로 앞장을 섰다. 총회 총무의 임기를 마치고 종암교회를 시무하는 동안의 20년은, 김 목사님의 목회와 행정, 그리고 연합사업의 결실기간이라고 하겠다.

장신대를 비롯한 계명대, 연세대 등 여러 학교기관 이사를 역임하면서 봉사한 일과 특히 1984년부터 1986년까지 NCCK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필자가 NCCK회장으로 봉사할 때 개인적으로 NCCK의 진로와 운영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다.

목사님께서 총회 기구개혁위원장으로 계실 때 우리 총회의 방대한 기구를 대회제도(Synod system)를 두어 지방자치제 형식으로 총회와 노회 중심으로 일하는 총회로 개혁하자는데 역점을 두셨다. 그때 나는 기구개혁위원회 서기로 보좌하면서 목사님의 교단에 대한 애착과 총회 사랑을 직접 보았다. 1500명의 총대로 모이는 총회의 회의는 지역분권으로 사업을 분산시키고 총회는 헌법과 이단사이비 문제를 다루고 대사회, 대국가 그리고 연합운동에 매진하자는 목사님의 주장이었다.

지난 4월 28일, 총회장 초청 증경총회장 모임에 불편하신 몸인데도 사모님과 함께 참석하셔서 총회의 연합운동을 위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여기, 목사님을 떠나보내는 이 자리엔 목사님이 계시는 자리마다 그림자처럼 동반자로 일생을 함께 하신 권경임 사모님을 비롯하여 가족들, 종암교회 성도들과 전국에서 총회와 함께 한 우리 모두는 "김윤식 목사님, 올곧게 잘 사셨습니다", "그동안 잘 하셨습니다"를 반복해 본다.

존경하는 김윤식 목사님, 오늘 떠나셔서 하늘의 면류관 받으시고 부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소서. 좋은 이름, 김윤식 목사님을 우리 모두 마음에 담습니다.

김순권 목사 / 증경총회장ㆍ경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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