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교회생활

바람직한 교회생활

[ 논단 ]

김학란 장로
2016년 08월 16일(화) 13:33

김학란 장로
성내교회

바람작한 교회 생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먼저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인 구조에서 보려는 세계관을 지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이 역사 속에 오시고, 이 세상을 위해 사신 것처럼 우리교회도 그 존재의 근거와 양식이 머리되시는 예수님과 같아야 한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셨고, 이 초대에 응한 무리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파견하셨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세상으로 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교회의 안과 밖이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름을 받고 모인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세상으로 파견돼 각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교회에 모였을 때만 신앙생활을 한다면 잠깐만 성도이고 그 나머지 날들은 모두 예수님과 관계 없는 이방인일 것이다. 과거 일부 교인들은 세상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해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교회 안에서의 경건을 우선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참된 신앙생활은 교회에 모였을 때나, 세상에 흩어져서 살 때가 똑같아야 한다.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일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다면 모르겠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그분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도 항상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교회생활의 안과 밖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둘째로 바람직한 교회생활은 보수신앙과 진보사상이 조화된 곳에서만 가능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모범적인 교인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이 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은 사상이 달랐다. 바나바는 진보적인 사상의 소유자였고, 바울은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가기를 원했으나, 바울은 그의 실수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바나바는 죄인이라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바울은 교회의 순결과 질서를 이유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안디옥교회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안디옥교회는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두 사람 모두를 포용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다시 선교지로 보내면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주님은 그 음성을 들으셨다.  

필자는 보수사상과 진보사상이 공존해야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들만 있으면 교회는 세상 속에서 힘을 잃고 독선적이 되기 쉬우며, 또 진보주의자만 있으면 세속화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안디옥교회는 사상과 의견이 다른 두 지도자에게 의견을 통일하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두가지 다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서로 다르게 창조하신 이유는 아마도 서로 부족을 보완하며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고 동시에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은 자신의 순결과 남의 부패를 막는 보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수라고 하는 소극적인 교훈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빛이 되라고 하셨다. 빛은 진보적이다. 어둠을 뚫고 새 것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교회생활도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바람직한 교회생활은 영원불변의 진리에 생명을 걸면서도 시대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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