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들과 함께 (4)외톨이 이주민, 공존하는 이웃으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들과 함께 (4)외톨이 이주민, 공존하는 이웃으로

[ 특집 ] "너희도 나그네였다"

김승일 목사
2016년 07월 19일(화) 16:23

김승일 목사
총회 이주민선교협의회 서기ㆍ고양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한국의 인구구조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2018년을 기점으로 고령사회(인구의 25%이상이 노인)에 접어들게 됨으로써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들어 인구절벽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경제성장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노인 부양의 부담을 증가시켜 경제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인구 보너스(demographic bonus)시대를 마감하고 인구감소가 경제에 짐이 되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 시대로 본격 전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출산장려정책과 더불어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6년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즉 한국사회는 앞으로 많은 외국인 이주민의 유입이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이미 예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유입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빠른 산업발전과 더불어 국내 제조업체의 인력난이 가중됨에 따라 한국사회로 외국인 이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 땅에 체류하는 외국인 이주민의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16년 5월말 현재 체류외국인은 194만 9216명이다. 취업이주민, 결혼이민자, 유학생, 난민, 북한이탈주민, 동포, 이민배경자녀 등 이들의 유형도 다양하다. 

이주민들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한국을 찾아 왔다. 그러나 이주민들에게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이주민들은 한국사회 안에서 '지역사회 중요한 구성원이면서 사회적 소수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 살면서 겪는 불평등과 차별, 인권문제,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 가족과 떨어져야하는 외로움, 언어와 소통문제 등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문제와 많은 제약들에 직면한다. 누가 외톨이 이주민들의 이웃이 돼 줄 것인가? 이주민들은 하나님이 우리 곁으로 보낸 자들이다. 지역사회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주민은 우리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이웃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를 '게르'의 역사로 보고 있다. 게르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자기 살던 지역을 떠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사는 자들로 현지 주민들의 환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보호받아야 할 손님이고 현지 주민들이 보살펴 주어야 할 '나그네'였다. 이스라엘의 포로기 이전의 게르는 '순전히 자기 동족에게서 떨어져 나와 다른 동족의 땅에 거주하는 자로서 자기 토지를 지니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포로 후기 시대의 게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성하는 두 구성원 중 하나'로 인정되면서 주변 인생들이 아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 구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들로 인정됐다. 

그리고 신약성서를 보면 기독교인들은 '흩어진 나그네'라는 자의식이 있다. 외국인 이주민을 가리키는 헬라어 '파로이코이'와 '크세노이'가 있다. 전자는 거류외국인으로 현지 주민만은 못하지만 '일정한 법적 권리를 가진 외국인'이고 후자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을 의미한다. 이주민은 낯선 사람이기에 일단 적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님으로 접대하면서 적대관계나 긴장관계를 극복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신약성서는 이 크세노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이웃사랑을 강조'한다. 그리고 강도 만난 유대인의 이웃 역할을 크세노이 사마리아인이 하고 있다. 즉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은 외국인 이주민을 공존하는 이웃으로 이해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주민들을 지역사회에서 외톨이로 존재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주민을 공존하는 이웃으로'받아들이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도 똑 같은 나그네'라는 우리의 자의식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우리 모두에게 구원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기독교인들에게 선교적 사명이 주어진다. 이주민 선교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구원이다. 사회구원은 이웃인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섬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사회 주요 구성원 중에 하나이자 소수자인 이주민을 외톨이가 아닌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섬기는 이주민 선교는 지극히 성서적이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감당해야할 이 시대 귀중한 사명인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란 다수자가 갖는 지배적인 위치 즉,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닌 소수자가 갖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수자를 '마이너리티'라고 표현하거나 '사회적 약자'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수자 중심의 사회적 풍토로 인해 보이지 않는 억압과 강요 속에 불평등과 차별을 받게 된다. 불평등과 차별은 인권문제를 동반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아래 흩어진 나그네라는 자의식을 갖고 이주민들의 인권향상과 삶의 질 개선을 도와주며 이주민들을 공존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상호존중을 우선으로 할 때 이주민선교가 가능하다. 
한국교회는 선교적 사명과 열정을 가진 세계교회의 일원이다. 2만 여 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고 있다. 해외선교 연장선에서 우리와 공존하는 이웃으로 다가온 이주민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이제는 한국교회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이주민들에게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3년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국내 이주민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교회나 단체가 불과 400여 곳 정도로 파악됐다. 한국의 6만 여 교회들 중 1%미만의 교회가 이주민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외톨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글로벌 시대를 넘어 글로컬 시대로 접어들었다. 진정한 세계 선교는 이제 지역사회에서 이주민 선교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지역사회 거주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고국 가족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적 소수자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문화가족, 외국인노동자, 외국인 유학생, 난민, 이민배경자녀, 동포, 북한이탈주민 등 이들 이주민들을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닌 공존하는 이웃으로 지역교회는 받아들이고 상호존중 해야한다. 양방향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주민은 온정주의적인 베품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다. 이주민 선교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현장이며, 글로컬시대 지역교회에게 주어진 선교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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