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에 대한 오해 풀기

'지속 가능한'에 대한 오해 풀기

[ NGO칼럼 ]

황병구
2016년 07월 13일(수) 10:44

이 수식어는 이제 너무 자주 들린다고 할만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즐겨(?) 사용된다. 하지만 그 본의를 생각하면 이 수식어는 어떤 개체나 단위조직들의 자체 존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어떤 개체나 단위조직들의 '생성'과 '성장', '결실'과 '소멸'의 건강한 사이클이 세대를 넘어 계속 가능하도록 하는 환경, 사회, 시장 내지 생태 시스템을 상정한 수식어이다.

영리조직이든 공익기관이든 간에 각 조직이 스스로 더 오래 살아남고자 애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적어도 '지속가능한'이란 수식어를 사용하려면 필시 '독존'보다는 '공존'이라는 명료한 가치가 더 드러나야 한다. '계승'과 '혁신' 역시 건강한 과정일 수 있지만 혹 자신의 내부에 국한된 것이라면 이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봐야한다.

기업들의 연간보고서조차 이제 지속가능성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재구성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이해 관계자들(고객, 직원, 투자자, 거래처) 등과 공존하기 위한 분석과 해법 및 성과가 포함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이해관계자는 점점 더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잠재고객, 잠재구성원, 잠재투자자 등을 상상하면 적절하다.

한편 법제나 사회적 프로그램에는 '일몰'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상태에 다다르거나 정해진 시점이 되면 매듭짓게 되는 정책이나 제도에 해당한다. 보건 정책 중 어떤 질병의 발병률이 일정기준 이하가 되면 예방 캠패인이나 지원금이 종료되는 것을 상상하면 되겠다. 유사한 관점에서 NGO들의 활동 즉, 시민단체나 문화운동, 구호단체와 심지어 선교단체들도 자신의 일몰에 대한 개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도리어 건강함의 증거일 수 있겠다.

이미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마무리되어야 할 조직이 별다른 새로운 목적도 없이 지속되면서 노화되는 것은 필시 안쓰러운 일이다. 그리고 더욱 추한 것은 맡겨진 소임을 더 이상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심을 가지고 그저 조직의 존속만을 시도하는 것이다.

주로 최고 경영자의 사사로운 이해가 끼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상태로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다른 조직에게 갈 귀한 자원을 허비해서 전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결과가 될테니 말이다.

개체와 단위조직 각자는 결코 영구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겸허히 수용하자. 그리고 자신은 적기에 소멸되고 자연스러운 일몰을 겪더라도, 추구하던 건강한 가치가 다른 모습으로 계승되어 모두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는 급진적 상상이 더욱 절실하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그런 이들, 그런 공동체들의 희생적 유산으로 발전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그대로 있을 때와 썩어져서 많은 열매를 맺을 때를 언급한 말씀은 그야말로 성경적 지속가능성을 가르쳐주는 핵심적인 비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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