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와 순교정신 (1)녹아지고 썩어지고 죽어지는

이 시대와 순교정신 (1)녹아지고 썩어지고 죽어지는

[ 특집 ]

이응삼 목사
2016년 06월 03일(금) 08:36

이응삼 목사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총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밀알은 아주 작다. 하지만 그 한 알의 밀알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한 줄기에서 많은 이삭이 나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고 있는 밀의 예를 들어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그저 한 알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5~26)"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신다'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밀알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됐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고, 제자들에게도 그 섬김을 따라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또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충격에 휩싸였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가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몰랐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뒤따르려는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망과 구원의 열매를 주셨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소망의 시작이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회 역사에 나타난 순교자들은 모두 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의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순간의 박해로 인해 육체의 몸을 죽게 할 수 있으나 영혼을 죽이지는 못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기를 피하지 않았다. 이런 순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박해의 시기에도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신앙 유산이 단절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순교자의 후예이다.

해마다 6월을 맞으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 즉 순교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으로 순교한 성도들은 일제의 신사참배와 핍박 때문에 순교한 교인들보다 6배나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6.25전쟁은 기독교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살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쁨으로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순교는 쉬운 길이 아니다. 하나뿐인 생명을 거는 일이다.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결코 걸어갈 수 없는 길이다. 나만 고통을 받고 죽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 때문에 가족이 희생당하고,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모습까지 봐야 한다. 그래서 순교는 가족이 함께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도 순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사전적 의미는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오늘 우리는 내가 믿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는가?

오늘의 순교정신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3~14절에서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소금이다. 소금은 녹아져야, 희생해야 맛을 내고 본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짜기만 할뿐 음식의 맛을 내지는 못한다. 그런 소금은 그 자체가 아무리 좋은 소금이라도 쓸 수 없다. 소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음식이 빛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먼저 소금의 희생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빛의 속성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역시 어둠을 밝히려면 내 자신을 희생하고 태워야 한다. 세상을 밝히려면 내가 빛이 돼야한다. 그리고 삶에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필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의 소금과 빛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총칼을 겨누고 목숨을 위협하는 시대는 아니다. 지구 상에 목숨을 걸고 내 신앙을 지켜야 하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켜야 할 믿음의 정신, 순교정신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을 향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해 많은 부정적인 말이 오가고 있다. 교회는 많은데, 교인은 많은데 왜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사회는 암울해지는가? 사람들은 "정치가 썩었다", "경제가 부패했다",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다"라고 말하며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 왜 이렇게 됐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사회 각 분야에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소금의 희생, 빛의 희생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희생처럼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가 조금 더 손해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더 충실히 감당했어야 했다. 이런 순교의 정신, 자기희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기독교인의 순교정신이 필요할 때이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쳐주신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하는 일,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순교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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