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싱글벙글 '스마일 맨' 이태춘 장로

<기독공보 기획> 싱글벙글 '스마일 맨' 이태춘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6년 05월 23일(월) 11:19
▲ 군산 남부교회 이태춘 장로.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택배영업소를 운영하며 특유의 넉살과 유쾌함으로 주변인들을 전도하는 장로가 있다.

군산노회 남부교회 이태춘 장로는 손주까지 둔 연배에 어린아이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업 차 만나는 사람들이 '험난한 세상에 뭐가 그리 재밌어서 항상 싱글벙글이냐?'고 물으면, "교회에 함께 나가보자. 가보면 알게 된다"고 답한다. 그만의 전도법이다.

이태춘 장로는 대신택배 군산신항영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친형들과 22살때부터 운수사업을 시작해 택배업으로 독립한지는 8년이 됐다. 직원은 5명을 두고 있다.

가난을 면해본다고 젊어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운수와 택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얕잡아보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났다. 반말이나 모욕적인 언사는 기본이고, 노예처럼 부리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화가 난다고 성질 부리면서 맞받아 치지 않는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화를 참아낸다. 그러다 보니 그를 신뢰하는 고정 수화주들이 늘어 사업이 성장했다.

이 장로는 사업을 하면 할수록 교회 다닌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앙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한템포 늦춰 말하는 신중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50여 년간의 신앙생활은 그에게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구분점을 일깨워줬다. '욱'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에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한다. '참게 해달라'고, 그리고 '웃게 해달라'고.

"흔히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관계라는게 내가 원하는대로 풀어지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일단은 웃고 봅니다. 사람과의 오해나 관계상 어려움을 겪을 때는 그냥 밝은 표정부터 짓고 봅니다. 상대방이 기쁘면 내 마음도 풀어지고 기쁩니다."

▲ 이태춘 장로 가족. 집안에서 제일 처음으로 신앙을 가진 이태춘 장로는 가족과 친척들 전도에 열심이다.

이 장로가 운영하는 택배영업소의 사훈은 '친절 봉사'다. 배달 현장에서 뛰며 온갖 일을 다 겪는 직원들이 안전운전은 물론 웃으면서 봉사할 수 있기를 무시로 기도한다.

과거에는 직업 특성상 전국을 누비면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적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언제나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를 간구한다.

이 장로는 "노후된 차량을 타고 대관령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다 엔진이 파열돼서 불이 날뻔한 일도 있고, 순천 쌍암재에서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갑자기 말을 안들어 방호벽에 일부러 부딪힌 후 차를 가까스로 멈춘 일 등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많았다"며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화물트럭의 히터 시스템이 그리 좋지 않아 추운 겨울은 이 장로에게 고난의 기간이었다. 그럴 때에는 잠시 차를 정차하고 주행으로 뜨겁게 달궈진 타이어를 꼭 껴안고 있었다는게 이 장로의 간증이다.

▲ 이태춘 장로 사업장 전경. 사훈은 자신의 성격과 맞게 '친절 봉사'다.

지금은 배달 일을 직접하지는 않지만 젊은 시절의 과노동에 따른 후유증으로 6년 전 디스크 수술을 했다. 수술 당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수술 후 2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완쾌되어 사업장에 복귀했다.

이 장로는 "아직도 수술 자리가 아플 때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뛰는 직원들이 더 힘드니 아픈 내색을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며 "우리 일이라는게 새벽 4시 정도에 시작해 밤늦게 끝나 육체적으로 고된 일인데, 요즘 잊지 않는 기도 제목이 '건강'이다"라고 전했다.

이 장로는 집안에서 가장 먼저 신앙을 가진 '1대 신앙인'이다. 전북 완주 화산면 종리의 조그만 부락에서 태어난 이 장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따라 사탕 먹으러 종리교회를 갔다가 결신했다.

당시 종리교회를 가려면 집에서 산을 하나 넘어 1시간 가량을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이 장로는 교회 가는 일이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종리의 그 부락은 온갖 우상숭배가 판치던 동네로, 이러한 환경에서 본인이 신앙을 접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이 장로는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교회 가는 것을 극심하게 반대해 몰래 다닐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 온유한 아버지는 '교회' 얘기만 나와면 매를 들었다. 어머니는 이 장로가 12살 무렵 복음을 접했지만, 역시 아버지의 반대로 교회를 다니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가 이 장로의 기도 끝에 임종 전 천국의 소망을 확신하며 영접했다.

이 장로는 "우리 형제들이 어린 시절 교회를 가면 아버지는 그렇게 싫어하셨다. 어머니는 교회를 못가면 집 한켠에서 기도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라도 복음을 받아들이시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 이태춘 장로는 20여 년간 일기를 써왔다. 수시로 일기장을 보며 지난 힘들었던 과거를 통해 교만을 버리고 낮아지기를 기도한다.

이 장로는 받은 은혜 감사한 의미로 남선교회 연합회 활동을 통해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전국단위 남선교회 회의와 행사에 참석하려면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해 업무를 하루 접어야 하지만, 물질 욕심 줄이고 선교에 헌신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또 이 장로는 기독실업인회(CBMC) 군산지회 차기회장으로 군산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며, '나눔 선교'라는 모임을 통해 20여 년 간 미자립교회와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이 장로는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이스께끼' 장사부터 가마니 짜기, 두부 제조 등 안해본게 없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애정이 간다고 한다.

이 장로는 "일기를 20년 이상 써왔다. 지난 힘들었던 과거를 기록으로 남기고 훗날 다시 펼쳐보며 교만을 버리고 낮아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며 "부족한 종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올바른 신앙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서상옥 담임목사님과 교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태춘 장로는 윤희숙 권사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이 장로는 결혼 후 처가집 식구 모두를 전도하기도 했다.

교계경력으로는 남선교회전국연합회 부회장과 감사, 남선교회 호남협의회장, 군산노회 남선교회장과 장로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군산노회 부노회장, 남선교회전국연합회 기획부장, CBMC 군산지회 차기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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