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파수꾼'

교회는 '파수꾼'

[ 논단 ]

김등모 목사
2016년 05월 18일(수) 08:31

김등모 목사
대전영락교회

북한의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소식이 쉼 없이 들려오지만 국민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있는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이 시간에도 든든히 국가를 지키고 있는 군(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 내부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어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도 군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평화롭게 지낸다.

평시에 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계'이다. 적이 우리를 공격하려는 기미가 있는가를 살피고, 적이 쳐들어오는지를 늘 감시하는 것이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시의 경계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경계병을 다른 말로 파수꾼이라 부른다. 파수꾼은 인간이 부를 축적하면서부터 생겨난 아주 오래된 직책이다. 파수꾼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도적이나 위험이 다가올 때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역할을 하라고 명하셨다(겔 3:17, 33:7). 곧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경고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들에게도 동일한 사명을 주셨다. "교회여 내가 너를 이 땅의 파수꾼으로 세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머지않았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회는 우리 주님과 세례 요한이 했던 것과 같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며 세상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무리 세대가 변해도 교회가 외쳐야 할 경고의 메시지는 동일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공동체이며, 그 진리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외쳐야 할 메시지의 내용을 가지고 어떠한 타협도 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위로를 담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이들은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로 격려할 수 있다. 대상과 상황에 따른 메시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메시지 안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우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경고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 낙심한 자도, 새 일을 시작하는 자도 구원이 가장 우선적인 필요이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팎에 선포되는 메시지들에서 경고의 내용이 사라져 버렸다. 긍정의 힘이 믿음인 것처럼 포장되기도 하고, 언변이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오도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며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것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진리를 밝히는 것을 꺼려한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불분명한 메시지가 자꾸만 전해진다. 심지어 불분명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현 시대를 이끌어가는 크리스찬 지도자로 명성을 얻기도 한다.

하나님이 교회에 요구하시는 파수꾼의 역할은 분명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불분명한 경고로는 누구도 다가올 심판에 대비할 수 없다. 과거 교회가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했을 때 그 안에는 큰 부흥이 있었다. 파수꾼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모진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교회는 계속해 부흥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당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깝다고, 임박한 심판을 대비하라고 경고해야 한다. 인간이 심판을 대비할 방법은 오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