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광주광림교회 박찬환 장로

<기독공보 기획> 광주광림교회 박찬환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6년 05월 04일(수) 10:07
▲ 광주광림교회 박찬환 장로.

"어, 어! 앞에 트럭 조심하세요!"

순식간이었다. 중앙분리대가 없는 고속도로에서 11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직원이 모는 1톤 소형트럭 조수석에 앉아 납품을 가던 길에 박찬환 장로(광주노회 광주광림교회)는 차를 폐차시키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경미한 부상에 그쳤다.

1982년의 일이다. 상대방 차가 5cm만 더 밀고 들어왔으면 그대로 압사해 죽는 상황이었다. 얼굴이 뜨거워 만져보니 산산조각 난 앞유리가 박혀 피가 철철 흘렀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순간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태권도를 오래 수련했는데, 순간적으로 얼굴을 막는 방어동작이 나오면서 큰 유리 파편들을 팔뚝으로 막아냈습니다."

당시의 사고는 박찬환 장로에게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후유증으로 얼굴과 목에 상처가 남아 주변에서 성형을 권하지만 "하나님 은혜 잊지말자"는 다짐을 되새기며 그대로 두고 있다.

박 장로는 "교통사고를 당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체험을 했다"며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더 쓰시려는 의미를 생각하며 사업도 좋지만 주변을 돌아보면서 베풀며 사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박찬환 장로는 전남 영암의 종가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제사문화에 익숙했다. 한달에 한번 제사상을 차릴 정도로 '조상 모시기'를 중요시한 집안에서 자랐다.

하나님의 섭리는 박 장로를 통해 집안에 펼쳐졌다. 5살 때 친구의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처음 나간 것을 계기로 이후 교회학교 생활에 모범을 보였고, 결국 가족 모두를 신앙인으로 인도했다.

▲ 하나님의 섭리는 박찬환 장로를 통해 집안에 펼쳐졌다. 축복의 통로였던 박찬환 장로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내리신앙을 물려주고 있다. 사진은 부인 윤희자 권사와 딸들.

"꼬마였을 때는 뭣도 몰랐습니다. 교회에서 학용품이나 먹을 것을 주니 그것 받으려고 행사만 하면 친구들보다 앞장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신앙이 자연스레 커간 것 같습니다."

박 장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성탄절 교회 행사 참석 중에 창밖으로 어머니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렸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어머니의 결신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교회를 갈때마다 즐거운 표정을 짓고, 교회 종을 치고 오는 날이면 뛸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교회가 뭐하는 곳인가?' 궁금해서 교회를 들렸다가 결신에 이르렀다.

초등학교 교사이며 유교문화가 몸에 밴 아버지는 친한 친구가 마을의 교회 목회자로 부임하며 복음을 접했다. 줄곧 아들의 성실한 신앙심을 눈여겨보던 차에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한 직후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제기용품을 마당에 모아놓고 불살라버렸다.

처가집 식구를 교회로 인도한 것도 간증이다. 박 장로에게 있어 '주일 성수'는 생명이다. 그런데 처남 결혼식이 주일로 잡히자 처가집 식구들에게 "예배를 드려야 해서 결혼식에 늦게 참석할 것 같다"고 말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장모님이 교회에 나오게 됐다.

▲ 광주광림교회 임직식에서 담임 정태진 목사를 비롯해 당회원들과 함께 자리 한 박찬환 장로(사진 앞줄 맨 오른쪽).

박 장로의 사회생활은 옷감을 떼다 파는 친척을 돕는 일로 시작했다. 그러다 장사에 눈을 뜨며 1980년부터 타이어 사업을 시작했다.

타이어를 공장에서 가져와 거래처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일 무렵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사업에 전념했다.

박 장로는 타이어 사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소재한 '타이어 천국' 대표로 국내 타이어 3사 제품을 취급하고 브리지스톤 타이어 광주총판을 맡고 있다.

30년 넘는 사업기간 동안 주변 업체들이 수없이 부도를 당했지만 박 장로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사업 과정이 계속 순항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돕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는 것이 박 장로의 설명이다.

박 장로는 "사기 당할 뻔한 적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슬기롭게 넘어갈 지혜를 주셨다"며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동역자들 덕분에 거래처가 부도가 나도 손해를 덜보곤 했다"고 말했다.

▲ 박찬환 장로는 총회 아동부전국연합회장을 지내는 등 다음세대 선교에 헌신해왔으며, 남선교회전국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십수년 간 자비량으로 남선교회 연합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사진은 필리핀 선교현장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줄 풍선인형을 만들고 있는 박찬환 장로.

이것은 사실 뿌린대로 거둔 열매다. 인생철학으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은 지킨다'는 신념이 투철해 사업과정에서 거래처로부터 무한 신뢰를 얻었다. 그러니 박 장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거래처에서 돕는 것은 당연했다.

광주광림교회는 1981년부터 출석해 1995년 장로 장립을 받았다. 교회학교 교사 봉사를 오래하며 총회 교회학교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을 지내는 등 다음세대 사역에 헌신하고,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 십수년 간 자비량 봉사하며 묵묵히 '남선교회 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박찬환 장로는 "남선교회는 여전도회와 함께 교회의 기둥같은 역할을 한다. 남선교회가 깨어서 살아있으면 한국교회가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초심을 회복하고 변화될 것이라 믿는다"는 소신을 전했다.

남선교회에서는 전국연합회 부회장과 감사, 기획부장 등을 거쳐 현재는 규칙부장을 맡고 있다. 아무리 사업이 바빠도 남선교회 일은 열일 제치고 달려간다.

이게 박 장로의 인생 철학이다. 박 장로는 "아예 안하면 모를까, 무언가를 맡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며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임을 항상 마음판에 새기고 기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호남신학대학교 장학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장로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밝게 할 예비목회자들이 더욱 장학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헌신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

가족관계는 광주광림교회 청년시절 만나 결혼한 부인 윤희자 권사와 슬하 1남 2녀가 있다.

교계 경력으로 광주노회장, 교회학교 아동부전국연합회장, 남선교회전국연합회 부회장, 호남신학대학교 감사 등을 역임하고, 현재 호남신학대학교 장학위원장, 남선교회전국연합회 규칙부장, 광주노회 교육자원부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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