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 기획> '돌아온 탕자' 조동일 장로

<기독공보 기획> '돌아온 탕자' 조동일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6년 03월 28일(월) 17:02
▲ 에덴동산 어린이집 이사장 조동일 장로.

목적헌금을 위해 적금을 가입하는 장로가 있다. 조동일 장로(인천동노회 동춘교회)는 2013년 적금에 가입했다. 장로 은퇴 후를 내다본 적금이다.

이 적금이 만기가 되면 조 장로는 은퇴 후 펼칠 선교에 사용할 예정이다. 조 장로는 이전에도 선교를 위한 적금을 수차례 가입했었다.

교회 성장 현황을 생각해보고 건축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건축헌금을 위한 5년 만기 적금을 들어 결국 통장 채로 헌금한 경우도 있다. 조 장로 가정의 적금 불입은 자산 불리기가 아닌 선교를 위한 목적이다.

조동일 장로는 "우리 가정으로서는 적금이 선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라며 "우리 집 형편을 볼 때 비교적 큰 액수의 헌금을 작정할 경우, 미리미리 적금으로 준비한다. 그러면 재정적 어려움도 없고, 솔직히 돈에 대한 영적 시험에서도 해방된다"고 설명했다.

조동일 장로의 부모는 황해도 피난민 출신이다. 1.4후퇴 당시 남한으로 내려와 서울역 인근 판자촌에 정착했다. 조 장로는 아버지가 중학교 입학 후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유년시절을 보냈다.

교회는 4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역 판자촌에 천막교회를 개척한 최인원 목사에게 신앙교육을 받으며, 중학생 때부터 교회학교 교사로 활동할만큼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했다.

"평생을 병자와 약자를 돌본 최인원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다보니 감사하게도 어려서부터 나누고 섬기는 게 신앙인의 참된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영적스승을 만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동일 장로는 젊은 시절 삶에 대해 묻자, '돌아온 탕자'라고 표현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 모범생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조 장로는 1970년 서울 명동의 유명 호텔에 취직하며 한순간에 '탕자'로 전락했다. 교회는 뒷전이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세상 유혹에 심취하는 시간이 15년간 지속됐다.

조 장로는 "호텔에 종사하며 알게 된 소위 '주먹세계 건달'들과 10년 넘게 어울리며 향락과 타락의 길로 갔었다"며 "그렇지만 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죄스러움이 자리잡아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조 장로에게 1985년 9월의 어느날,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신앙의 정도를 걷지 못하고 방황하던 조 장로를 위해 기도해오던 부인 최승순 권사의 권유로 한얼산기도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기도하던 중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조 장로는 "기도원에서 창자가 끊어지도록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강사 목사님의 말씀제목이 '탕자의 비유'였다.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고 회개기도를 드렸다"며 "내 잘못을 깨닫고 멋대로 가던 길을 돌이켜 주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죄에 대한 용서와 은총을 느끼며 감사가 넘쳤다"고 말했다.

또 조 장로는 "아내의 기도제목은 늘 '남편이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올바른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아내 기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 조동일 장로는 남선교회 전국연합회 임원을 비롯해 다양한 부서에서 봉사한 '남선교회 맨'이다. 사진은 남선교회 국제부장으로 미국교포 대학생들을 인솔해 모교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한 모습.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조동일 장로.

기도원에서 하산 후 생활의 변화를 겪으며 과거 환락의 길을 함께 걸었던 친구들과 직장의 회장 및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갑자기 변한 그를 보고 일부 지인들은 '미친사람' 취급을 했다.

달콤한 유혹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한 바 되니, 범사에 감사가 넘쳤다. 생활의 우선선위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변화했다. 직장 퇴직금의 십일조를 드리고, 이후부터 물질관도 바뀌어 교회헌금에 대한 주저함이 사라졌다.

직장을 퇴직한 후 주산학원을 운영했다. 운영 경비를 제하고 모두 교회 헌금을 위한 적금을 들었다. 이때부터 목적헌금을 위해 적금을 가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여러번 겪기도 했다. 상가를 분양받는 과정에서 업자의 속임수로 위기를 맞고 심지어 화재까지 발생했지만, 한번 견고해진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또 부인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죽음 직전의 절망 상태까지 갔지만 '여호와 라파'의 기적으로 가족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 장로는 현재 인천 남동구에서 부인과 어린이집 '에덴동산'을 운영하며 어린 영혼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교직원이 30명에, 원생이 160명 가량으로 남동구에서 가장 큰 어린이집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남선교회 맨'으로 전국연합회와 산하 다양한 부서에서 자비량 봉사하고 있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는 부회장과 부회계, 국제부장(2년), 국내선교부장(3년), 서울강남협의회장 등을 맡으며 동역자인 남선교회 회원들에게 따뜻한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되고, 거기다가 행정력과 통솔력까지 인정받았다.

▲ 내리신앙으로 믿음이 돈독한 조동일 장로 가족.

조 장로의 남다른 성격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있어 계획되지 않은 의외의 기부가 많다.

조 장로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늘 붙잡고 산다"며, "살다보면 왜 어려움이 없겠는가. 하지만 불평보다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주님의 자녀는 결국 승리자가 된다는 믿음이 내겐 있다"고 강조했다.

조 장로는 인생 여정과 은혜를 남선교회 회원들과 나누고자 최근부터 남선교회 전도단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조 장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최선의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기쁨을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릴 수 있는 장로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물론 동춘교회 윤석호 담임목사님과 서정남 장로님을 비롯한 당회원들과 교인들, 인천동노회 남선교회연합회 전 회장님들과 회원들의 애정어린 기도와 후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조동일 장로는 부인 최승순 권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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