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 (1)'경천애인'의 바른 지도자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 (1)'경천애인'의 바른 지도자

[ 특집 ]

김운성 목사
2016년 03월 02일(수) 08:58

김운성 목사
땅끝교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로 인한 혼란이 극심해 보인다. 최근에야 가까스로 선거구를 확정지었고, 여당은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고, 야당은 여러 개로 분립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중이다. 그런데 등록한 많은 예비후보들 중 전과가 있는 사람이 무려 37.6%나 된다고 한다. 일반 국민보다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 기본적 양심과 도덕성까지 외면했던 사람들이 선량(選良)이 되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특히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국가적 난제가 산적한 이 때 우리나라에 적합한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지도자의 여러 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경천애인의 사전적 뜻은 '하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함'이다. 하늘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위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경천애인'의 정신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이미 잘 나타나 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경천애인은 진정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경천애인'을 정치 지도자들에게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에 '성균관 스캔들'이란 드라마를 잠시 보았는데, 그 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기억난다. 

일 년에 한 번씩 성균관 유생들이 학문을 겨루는 대회를 열고, 장원자에겐 임금님이 특별 하사품을 내리는 전례가 있었다. 그 날도 학문을 겨룬 끝에 맨 마지막에 유생 두 명이 남게 됐다. 그들에게는 임금이 직접 질문을 하고, 정답을 말한 사람이 장원을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그 날 임금이 내린 질문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백성들에 대해 가져야 할 가장 큰 사명은 무엇인가?'였다. 두 유생은 나름대로 답을 냈는데, 하나는 '친민(親民)'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민(新民)'이었다. 

두 답은 모두 절묘했다. 친민은 백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신분의 상하관계가 엄격하던 조선 사회에서 사대부가 일반 평민들, 심지어 천민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놀라운 발상이었다. 아마도 당시에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백성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임금님이 뽑은 정답은 친민이 아닌 신민이었다. 임금은 양반 사대부들이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사대부라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넘어서서 백성들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고 백성이 평안하다고 본 것이다. 지도자는 백성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친민과 신민을 모두 잘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선택되길 원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고압적 자세를 버리고 국민들의 눈높이로 내려와 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친민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특권 의식을 가진 채로 국민들과 너무도 먼 딴 세상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은 필요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친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을 새롭게 변화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신민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 
그러나 여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친민하는 사람은 환영받지만, 신민하려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친하게 지내려고 다가오는 사람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일부 정치인은 바른 방향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현혹시킨다. 이것이 값싼 포퓰리즘(populism)이다. 포퓰리즘은 분명한 의식이 없는 인기영합형 정치이다. 이런 지도자가 많이 나타나면 나라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지도자라면 국민에게 쓴 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당찬 비전과 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을 설득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동여매도록 호소할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국민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지도자, 국민의 의식과 삶을 새롭게 갱생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친민과 신민을 모두 이룬 참 지도자의 표상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친민이 이뤄지려면 가까워져야 하는데,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떠나 이 천한 세상 사람들에게로 성육신하여 오셨다. 그리고 불쌍한 인생들 곁에서 친구가 되어 주심으로써 친민하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단지 친민만 하신 게 아니라,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 죄인이 의인으로, 사단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예수님 안에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된다. 

예수님도 이 과정에서 많은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나 예수님은 값싼 포퓰리즘을 남발하지 않으셨다. 친민만하려 하셨다면 날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일으키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회개의 메시지, 영생의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결국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참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먼저 전과가 있는 사람들은 좀더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말로 국민을 새롭게 할만큼 먼저 스스로가 변화됐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아울러 값싼 인기 영합적 공약을 제시하는 사람들 역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공의와 사랑의 정신에 따라 국민들과 하나가 되고, 국민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올곧은 사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련이 있어도 국민들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선택돼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을 새롭게 신민할 때의 기준은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공의, 평화, 질서를 지키며 백성을 신민할 수 있는 진정한 경천애인의 지도자가 선택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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