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 NGO칼럼 ]

백성희 목사
2016년 01월 27일(수) 10:04

필자가 섬기는 노인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이 85세가 넘는다. 그 중의 절반 이상은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어서 늘 긴장을 해야만 한다. 다른 어르신들도 대부분 노인성 질환들을 앓고 계신 분들이어서 죽음을 늘 가까이에서 느끼며 살고 있다.

오늘 시설을 찾아온 방문자로부터 "목사님은 이 사역을 하시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을 받고 제가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지를 잠깐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어르신이 입소할 때 눕혀서 오셨던 분이 건강을 회복하여 앉기도 하고 걷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신앙이 없던 어르신이 이곳에 오셔서 예수를 믿게 되고 자녀들이 방문하였을 때는 "내가 믿어보니 괜찮더라. 너희들도 예수 믿어라!"며 전도하는 모습을 볼 때 또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어르신들과 생활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마지막 임종을 지켜드리는 때이며, 장례식을 집례 할 때인 것 같다.

임종을 앞둔 어르신의 곁에서 손을 잡아 주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예배하는 가운데 천국으로 떠나보내는 순간,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다.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헤어짐의 슬픔과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그 동안 수고했다. 잘하였다!'며 등을 토닥거려 주는 것 같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경험하기도 한다. 지난 주에도, 92세 되신 할머니를 천국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어르신이 누워 계신 방에 들어가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 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시며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이셨는데, 2시간이 지난 뒤에 편안히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임종을 하셨다.

노인요양시설인 이곳 '경북작은자의 집'에서 참 많은 어르신들의 임종을 지켜봤다. 그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어르신이 계시는데, 작년에 하늘나라로 가신 이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고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던 분이다. 막내아들 내외가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실 생각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을 시켰는데, 어르신이 자신의 신병을 비관하여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겁이 난 자녀들이 저희 시설로 모시고 와서 6년을 넘게 동고동락하다 천국에 가셨다. 평소에 꼿꼿한 성품으로 남에게 조금도 의존하지 않으려 했고 신사의 품위를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분이셨다. 암 세포가 뼈와 장기로 퍼지면서 통증에 시달렸고 앙상해진 모습으로 죽음 앞에 다다르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혼자서 가야 하는 죽음 앞에서 두려했다.

"목사님! 나 좀 빨리 가게 기도해 주이소." 그 동안 입버릇처럼 빨리 죽기를 원한다고 하셨지만, 정작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니 두려움에 떨고 계셨다. 그래서 밤에 불을 끄는 것조차 싫어하셨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끝까지 함께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해 드렸다. "이젠 예수님 손 꼭 잡고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가세요. 먼저 가서 기다리시면 저희도 갈 거예요. 어르신!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편안한 모습으로 천국에 가셨다.

모든 사람은 한번 살다 죽게 된다.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또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 다 주듯이 값지게 쓰여진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렇다! 하루를 잘 보낸 사람이 행복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처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잘 죽으려면(Well-dying) 잘 살아야(Well-being)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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