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교회 부임과 건축

효자동교회 부임과 건축

[ 목양칼럼 ]

백남운 목사
2015년 11월 17일(화) 17:01

난생 처음 갔던 제주도 화북교회,  첫날 새벽 세차게 부는 바람에 겁을 먹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그래도 3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기도한 때가 다 되어 가고 있을 때 많은 분들이 새 부임지를 소개해 주셨다.

내가 군 입대하기 전 전북대학교 총장이셨던 유영대 장로님은 총장 임기를 마치고 모교 발전을 위해 매산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셨다(당시의 사회풍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단이셨다).

유 장로님은 가시면서부터 내게 매산고등학교에 같이 갈 것을 말씀하셨다.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같이 일하자고 하셨는데, 제주에서 3년이 다 될 즈음 또 다시 연락 하셔서 "목회하시기를 원하니 나와 함께 목회하자.

내가 은퇴하고 교회를 하나 세우는데 순천으로 내려와 같이 목회 하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장로님께 사랑만 받은 자로 장로님께서 몸이 불편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장로님을 생각하면 항상 사랑에 빚진 자다.

3년의 때가 되자, 여기저기서 새 부임지를 소개해 주시고 전화도 해주셨는데 공부를 더 해볼까하는 욕심이 생겨서 바로 응답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효자동교회에서 청빙을 했다. 이력서도 내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위임목사로 청빙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한 주 동안 기도원에서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야 이놈아! 너는 아무 곳이나 간다고 하는 놈이 왜 안 간다고 하냐?'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나는 바로 "예"하고 효자동교회 부임한 후 임지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기로 했더니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 효자동교회에 앉혀 놓으셨다.(너, 기도한적이 없지 않느냐?) 효자동교회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700m를 걸어서 들어가는 도시 변두리, 절대농지 안에 50평 시멘트 블럭으로 지어진 아담한 교회였다.

부임하자마자, "교회를 옮겨지으면 어때요? 학교 앞에 있는 논이 아주 좋던데요"라고 물었다. 장로님들은 "목사님 그것은 우리들의 꿈입니다. 그런데 돈이 있어야지요." "그럼 가서 밟고 기도합시다"하여 장로님들을 모시고 지금 있는 교회터를 밟고 기도하였다. "이것 1000평쯤 되는데 다 주시라고 합시다." "큭큭큭, 목사님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는 여호수아 1장 3절 말씀인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으로 하자고 독려했다.

이 믿음을 실천하기 위하여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어김없이 밟은 땅을 한번 돌면서 기도하고 가기를 3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다 주셨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긴다고 하는 말씀이 이루어 진 것이다. 이 대지 위에 지금의 예배당 500평, 교육관 800평을 세우게 된 것이다.

교회를 세울 당시 효자동교회 1년 예산은 3000만원, 교인들은 120여 명이었다. 그럼에도 기도의 힘은 전에 있던 교회의 땅보다 3~4배나 비싼 땅 1000여 평을 주셨고 당시 3억이 넘는 예배당을 건축하게 됐다. 전적으로 기도하고 믿는 겨자씨만한 믿음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나는 '목회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목회철학이 생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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