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온편지]40대에 발견한 사명

[땅끝에서온편지]40대에 발견한 사명

[ 땅끝에서온편지 ] 1

이희운 선교사
2015년 11월 17일(화) 11:54

인도는 중국의 3분의 1면적인데, 인구는 약 13억 명이 살고 있다. 세계 7대 경제 대국으로서 7%대의 꾸준한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중국에 이은 차세대 강대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5000년의 역사 속에서, 여러가지 영광과 오욕, 카스트제도의 갈등, 그리고 250여 년의 영국 식민지배를 겪은 인도 사람들은 왜곡되고 뒤틀린 영혼육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외국인의 선교활동은 금지돼 있고, 힌두교 80%, 이슬람교 14%, 기독교 2.3%, 시크교 1.7%의 현실 속에서 선교사는 위장, 간접 또는 추방을 각오한 직접 선교를 하곤 한다.

필자는 10대 초반 불신자였던 부모님의 눈을 피해 교회학교에 열심히 다니다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20대 초인 청년 시절은 '힌두교와 카스트제도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고 불교가 시작된 나라인 인도 선교는 어렵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깨닫지 못하던 시기였다. 30대 초반 신대원 졸업과 동시에 기도원지기를 마치고 공장과 건축 현장에서 일하며 산업선교 훈련을 받는 중엔 '가난한 제3세계 사람들이라면 효과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필자가 40살이던 지난 2001년 4월 부활절, 인도 벵갈루루를 쉼과 재충전을 위해 방문하게 된다. 성지순례는 물론 해외 여행이 처음인 필자는 인도의 자연을 보며 그 동안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로 살았는지 깨닫게 됐다. 인도에서의 3개월은 매일 눈물의 회개와 함께 인도선교를 준비하는 정탐기간이 되고 말았다. 

남인도의 선진도시 벵갈루루의 곳곳에 있는 빈민촌 천막들과 건축 현장에서 노숙하며 험한 일을 하는 연약한 여성, 노인, 아이들의 모습, 농부들의 퀭한 눈빛 속에는 불합리한 신분제와 종교에 대한 분노가 누적되었다. 급기야 인도의 유수한 신학교 도서관에서 오열하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게 됐다. "20년 인도를 섬기겠습니다. 3년 내에 다시 인도에 와서 카스트제도 타파와 인도선교에 매진하겠습니다. 참된 교육,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004년 7월, 총회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열악한 경제 여건 속에서 아내 그리고 세 딸들과 함께 인도 선교를 결심했다. 1년 간의 문화 적응과 언어 훈련 등의 시간을 가진 후, 2005년 전주시온성교회와 방파선교회의 후원을 통해 인도선교를 시작하게 됐다. 


이제 50대인 필자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이는 하루도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큰 죄인임을 자인하기 시작했다. 여러 교회 개척과 건축, 목회자와 청소년 훈련, 빈민지역 보육원과 공부방, 현지교회 후원과 동역 등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죄인의 선교'였다. '하나님의 선교'를 한다고 고군분투했지만,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면 무수한 성공과 실패 속에 죄인들의 선교를 계속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오직 하나님의 원칙만을 따라가는 순결한 사랑의 선교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앞으로 성령으로 행해지는 인도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희운 선교사/총회 파송 인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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