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재물

[ 논단 ]

서경기 목사
2015년 10월 20일(화) 10:08

서경기 목사
한아봉사회 사무총장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너무 당연한 교훈이지만, 최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져 독자들과 재물을 주제로 이야기하려 한다. 사실 돈과 재물에 대한 추문 자체보다도 이런 잘못에 대한 경계심과 자성의 노력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더 걱정된다. 
재물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는 명백하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에 대해 정확한 지침을 제시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재물이 방해가 된다면, 그건 재물이 우상이 된 증거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 사정을 들어보면 재물에 얽매이게 된 사정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선을 그은 것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라는 말씀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재물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 재물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한 분이 안동 일직교회에서 종지기를 하며 '몽실 언니'와 '강아지 똥' 등의 동화를 지은 권정생 선생이다. 시 '밭 한뙈기'에서 그는 재물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함께 나눠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 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졌기에 그는 가난했지만 떳떳했고, 평생 모은 인세를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었다. 재물의 다소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세상에 매이지 않으려면, 재물을 보는 방식이 세상과 달라야 할 것이다. '땅'이란 말을 들으면 세상은 즉각적으로 재물을 불리는 용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시인 안도현에게 땅은 즐거움과 슬픔을 느끼는 공간이고, 자식에게 아름다움을 물려주는 세계로 여겨진다.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재물에 대해 세상과 다르게 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눈을 가지게 됐는가? 주님을 만난 부자 청년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따르라는 주님의 요구에 그만 좌절했다. 청년은 율법을 잘 지켰지만 재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중세의 프란치스코는 재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부유한 포목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남들 못지않게 윤택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일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와 점점 멀어지게 됐고 마침내는 상속권까지 포기했다. 그는 입고 있던 옷도 아버지께 돌려주고, 벌거벗은 채로 '나는 앞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것'이라 선언했다. 그가 가난과 결혼한 순간이다. 그로 인해 복음은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게 됐다.

우리는 재물의 추문에서 벗어나야 하고 재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또 그럴 때에만 주님을 따를 수 있으며,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도 세상에 널리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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