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절망과 화해의 공존지

가정, 절망과 화해의 공존지

[ 희망편지 ]

장보철 교수
2015년 10월 20일(화) 10:06
   

얼마 전 우리는 추석 연휴를 보냈다.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후에 이혼 소송이 급증한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 부부와 고부간의 갈등이 명절 동안에 고스란히 드러날뿐더러 더 깊은 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가정만큼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곳은 없는 것 같다. 가정만큼 이중적인 모습을 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여자, 그러나 집에서는 매맞는 여자일 수 있다면 너무 끔찍한 억측인가. 너무도 서로 사랑해주는 것 같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족이 주위에 있다면 어쩌면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지옥을 가정에서 경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가정은 최상의 사랑과 공감이 시작되며 완성되는 장소이며, 가족은 그러한 사랑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관계들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와는 정반대로 지독한 상처와 아픔, 배신과 침묵, 고난과 외로움 또한 줄 수 있는 장소이며 사람들일 수 있다. 가정에서 가족에 의해서 받는 상처는 매우 깊다. 타인에 비해서 상처를 일으키는 관계가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많으며, 그 관계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가족에 의해서 받는 상처는 또한 매우 예리하다. 그래서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 대상이 아내든 남편이든 혹은 자식이건, 한 번 그 칼에 찔리면 그의 마음, 정신, 몸, 영은 산산조각으로 망가진다. 그래서 치유가 매우 힘들고 오래간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어쩌면 그저 한 가족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 나에게는 그 정도는 요구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한다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신의 꿈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시부모는 며느리가 자신들의 모든 요구를 다 해야만 한다고 대통령처럼 군림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특히 기독교 가정의 경우, 기독교의 이름으로 참고 용서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에 더욱 더 치유가 어려운 경우를 본다. 부모이기에, 남편이기에, 아내이기에, 시부모이기에 상대방에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아집과 독설은 다름 아닌 폭력이라는 이해를 갖는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을 서서히 죽일 수 있는 살인행위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벌써 10월도 중반을 넘어간다. 올해도 2개월하고 조금더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의 차가운 말과 행동으로 가족 모두가 죽어갈 수 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나의 생각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은 남편과 아내,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꼭 말해 보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의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실천적 행위가 나타나는 곳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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