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를 팔아요!

비지를 팔아요!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이창희 목사
2015년 08월 31일(월) 16:23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 45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필자가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하나님의 소명이 그리워 남들이 부러워하던 교직을 사표내고 강원도와 충청도 경계, 아주 산골 시골교회 전도사로 부임해갔다. 버스를 타려면 2km를 걸어 나와야 하는 산과 하늘만 보이는 마을인데 골짜기마다 약 2, 30호 정도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독립마을 4개 부락이 전도대상 선교지역이었다. 부임 첫 주에 모인 전교인이 20여 명도 안되는 자립대상교회인데 넉넉한 것은 교회 앞에 흐르는 물과 바람뿐이었다. 흰 고무신을 신고 약장사 가방 비슷한 심방가방을 들고 산 밑에 남편도 없고 조금 모자라는 장가도 못간 노총각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60세가 조금 넘은 여자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다. 허물어져 가는 시골 초가집인데 방에 들어가려면 돌계단을 등산하듯 몇 개를 올라가야 마루가 나오고 높은 마루를 올라가야 방으로 들어가는데 방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면 이층집에서 1층을 내려다보는 듯 현기증이 나는 집이었다.

그 당시 시골 생활이 그렇듯 쌀밥 구경은 명절과 생일과 조상 제삿날이나 구경하고 거의 강냉이 밥이나 잡곡과 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다. 이 여집사님 생활도 다름없이 가난이 철철 넘쳐흘렀다. 사면이 다 산이기에 낫만 들고 올라가면 나무는 얼마든지 해 올 수 있기에 두부콩을 사다가 손수 맷돌에 갈아 두부를 만들어 고무대야에 이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팔아서 근근이 연명하는 가정이었다.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설교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쳤다.

시골생활에 낯익지 않은 초년병 전도사가 뭘 안다고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집사님? 두부를 하면 비지가 나오지요? 그것 버리나요?" 나는 비지를 밖에 버리는 줄만 알고, 버리지 말고 소 돼지 먹이는 집에 팔면 돈이 된다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려는 생각에서 물은 것이다. 선뜻 대답은 못하고 우물쭈물하더니 계면쩍은 모습으로 "버리기는요. 먹지요!"하는 것이다.

심방가방을 들고 논둑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비지를 먹지요!"하는 음성이 내 귓전을 때린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비지를 먹고 살진 않았는데 우리교회 집사님은 비지를 먹고 사는구나!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듯 망부석처럼 제비가 날아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람도 다니지 않는 논둑길에 엎드려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한없이 울었다. 두부도 못 먹고 비지를 간장에 비벼먹고 사는 가난한 집사님에게 "비지를 버리나요? 팔아서 용돈하세요!"하는 어린 전도사의 말이 그 집사님에게 얼마나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였을까? 그저 부끄러워 쥐굴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실컷 울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여보! 우리 집 쌀 좀 있소?"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시골전도사 쌀독에 쌀이 있을 리가 없다. 한 되도 못되는 쌀을 비닐주머니에 싸들고 구판장 시골가게에 가서 국수 몇 봉지를 사들고 다시 그 집사님 집에 올라가서 극구 사양하는 집사님 마루에 쌀과 국수를 던져 놓고 내려오니 조금 전 울면서 내려가던 그 길에 발걸음이 조금은 가볍고 사죄받은 느낌이었다.

 이창희 목사  / 함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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