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어디로 가라는 신호인가

또다시 어디로 가라는 신호인가

[ 주필칼럼 ] 주필칼럼

이홍정 목사
2015년 08월 27일(목) 09:44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일본과 중국에서 유학한 엘리트로, 해방 후 노점 책장사를 하며 '시를 파는 거지'로 문학인생을 시작한 고 한하운 시인은, 좌우 냉전세력이 충돌하는 혼돈의 시대에 '천형'과도 같은 한센 병을 앓으며 시를 썼다. 그는 그 아픔을 담은 시의 표현으로 인하여 이념적 형벌이라는 덤터기마저 썼다. "죄명은 문둥이…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라고 절규했던 시인의 '고우 스톱'이라는 시는 이렇게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빨간 불이 켜진다. 파란 불이 켜진다… 나도 의젓한 누구와도 같이 사람들과 사람들 틈에 끼어서 이 네거리를 건너가 보는 것이다. 아, 그러나 성한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앞을 다투어 먼저 가버린다. 또다시 빨간 불이 켜진다. 또다시 파란 불이 켜진다… 아, 그러나 또다시 성한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앞을 다투어 먼저 가버린다. 또다시 나에게 어디로 가라는 길이냐? 또다시 나에게 어디로 가라는 신호냐?"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진행되는 총회기구와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들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10년을 가로지르는 전망도, 진정성 있는 노력도 없이, '조석지변'처럼 총회기구가 변화되어 온 것을 실감한다. 2003년 제88회 총회에서 4개의 사업부서와 1개의 행정지원본부를 골자로 축소형 기구개혁안이 통과되었다. 수년간의 토론을 거치며 변화에 수반되는 제반 정책시행지침들을 준비하여 시행하였다. 그러나 제93회 총회에서 군농선교부라는 기형적 부서가 생겨난 후, 제98회 총회에서 군선교부와 농어촌선교부로 분립되므로, 총회기구는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한 회기를 지나며 또다시 축소지향의 기구개혁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의 기구개혁 논의의 현실적 배경과 정책방향은 지난 제88회 총회의 기구개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성장시대가 가져온 거품과 신기루를 털어내고 지속가능성의 제고를 위해 '체형관리'를 해야 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배경이요, 정치화된 지역노회와 개 교회중심의 지교회가 선교공동체로 거듭나서 공동의 선교를 위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다. 정책 중심의 총회, 사업 중심의 노회, 정책을 사업으로 구현하기 위한 인적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중심의 총회훈련원, 이 세 기구가 삼발이가 되어서 지역교회와 노회와 교단에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기구개혁의 핵심이다. 그리고 지역별노회선교협의회를 통해 광역단위의 공동의 선교과제를 수행하므로 사업노회를 보완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환경은 그동안 더욱 악화되어 누구도 총회구조의 확대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동안에도 총회는 기구를 확대하는 결의를 하였다. 여기에 작용한 정치적 동기들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은 현장의 필요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부서와 부서별 실행위원회와 별정직 총무제도로 운영되는 현재의 구조나, 대안으로 논의되는 총회장 2년 전임제와 4개 본부장제도와 대회제도나, 모두가 전형적인 사업총회의 구조라는 것이다. 현재의 기구가 사업부서가 아닌 상임위원회로, 별정직 임기제 총무가 아닌 일반직 정년제 국장을 골간으로 하는 정책총회의 구조로 개선하지 않는 한, 사업총회의 기구축소나 확대가 대안이 될 수 없다. 각 사업 부서를 현장의 세분화된 필요를 따라 전문성 있는 상임위원회로 조정하고, 이를 상호 연관된 분야별로 대분하여, 각 분야에 일반직 국장들을 배치하면, 향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상임위원회의 수와 배치된 직원의 수를 유연성 있게 조정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욕구'의 해소를 위해 대회제도를 만든다는 발상은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지역별노회선교협의회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총회장 2년 전임제의 발상은 전임감독제 시행으로 내홍을 앓아온 기독교대한감리회를 반면교사로 삼고, 개혁교회의 정체성과 대의정치제도를 근간으로 재고해야 한다. 이는 전 교단을 권력의지가 충돌하는 정치마당으로 변질시키며 자칫 공멸의 길로 이끌어 갈 수도 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예수님의 정치학의 원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가 주된 관점이 되어야 한다.
 
"가고 가도 붉은 황톳길 /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 가는 길 //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며, '천형'의 아픔을 절규했던 고 한하운 시인, 그의 마음이 되어 오늘의 상황을 되묻는다. "또다시 나에게 어디로 가라는 길이냐? 또다시 나에게 어디로 가라는 신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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