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평할 수 없는 목사다

나는 불평할 수 없는 목사다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송유광 목사
2015년 08월 26일(수) 17:33

바울은 서신의 마무리를 목회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의 이름을 열거한다.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 놓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아가야에서 처음 익은 열매 스데바나 등등 바울은 자랑스러운 동역자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부족함을 아시고 42년 목회하는 동안 정말 훌륭한 분들을 만나 함께 교회를 섬기게 해 주셨다. 총각 시절, 내가 학교에서 올 시간에 불을 때 따뜻하게 해주시며, 식사를 준비하시고도 한 번도 겸상을 하지 않으신 신림교회의 권사님, 강단에 올라갈 때마다 계란을 준비해주신 집사님, 좋은 것을 살 때마다 나를 생각하며 내 것도 같이 사서 주신 권사님, 나는 이런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들과 함께 목회를 하고 있는 행복한 목사이다.

우리 교회에 한 분이 등록했다. 심방을 갔더니 자신은 진주에서 건축업을 크게 했다가 IMF때 사업이 부도를 맞아 서울로 이사 왔다고 말하며 그랜저 승용차를 한 대 기증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랜저'는 내 형편에 맞지 않는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주간에 회사의 모든 물품이 가압류를 당하기에 그 중 가장 좋은 차를 내게 주려고 했던 것이다. 참으로 미안하고 감사했다.

집사님은 어느 날 김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어느 주일날 집사님이 20분 늦게 오셨다. 나는 아무리 집이 멀어도 예배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쳤다. 집사님은 머리를 숙이며 목사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집사님이 수입이 없어 생활을 위해 전세 보증금을 빼 월세로 전환하느라 김포로 옮겼으며, 예배에 늦은 이유는 돈이 떨어져 5000원어치 기름을 주유하고 교회에 오다가 기름이 떨어져 차를 길에 놓고 버스를 타고 오다가 늦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집사님께 너무 미안했다.

자신도 힘들지만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장로된 후에도 부족한 나에게 한 번도 "안됩니다"라며 자신의 의견을 내 놓은 적이 없다. 이런 장로님을 만난 것이 내겐 행운이었다.

나의 목회생활은 이런 천사들이 많아 참으로 행복하다. 교회는 작지만 이렇게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많다. 망우리에서부터 20년간 김치를 담아 나르며 봉사하신 권사님, 사업 때문에 미사리로 이사 가서도 주일에 택시를 타고 오면서까지 학생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권사님, 한번은 신천지에 빠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 내가 힘들어하자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하며 문자를 보내주며 내 손을 잡아준 분들이 우리 교인들이다.

한 장로님은 오티스 엘리베이터의 연구팀장이다. 전 세계 오티스 엘리베이터를 연구하는 대단한 실력자이시다. 그러던 장로님이 좋은 직장을 사직하고 서산시 대산읍의 꿈의학교 교사로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장로님의 답은 분명하다. "직장을 따라 내려가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은 영광교회의 장로"라면서 지금까지 영광교회를 섬기고 있다. 한 권사님은 공주에 가서 생선가게를 하며 어렵게 사신다. 그런데 주일날은 영광교회를 섬기겠다고 올라오신다.

이런 충성스러운 종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때론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지만 힘들수록 충성스럽게 일하는 종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기쁨으로 교회를 섬긴다. 나는 불평할 수 없는 목사다. 부족한 내게 이렇게 천사 같은 믿음을 가진 분들, 눈이라도 빼어 주려 하는 교인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 신앙을 존경한다. 영광의 성도들, 모두 모두를 사랑한다. 당신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송유광 목사  / 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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