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어디까지 왔니?

너, 지금 어디까지 왔니?

[ 희망편지 ] 희망편지

장보철 교수
2015년 08월 26일(수) 13:22

아버지께서 심상치 않다는 전화를 받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끼리 식사라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누님의 목소리였다.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상주로 가 버리고 말았다. 이걸 어쩌나? 점심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료도 거의 바닥이어서 채워야만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쯤 와 있니?" 막내 아들 가족이 온다니 기뻐하셨다는 아버지께서 전화하신 것이다. "조심해서 오고, 이따가 보자." 그 사이를 못 참으시고 어디까지 왔느냐고 물으시고 조심해서 오라는 아버지.
 

▲ 이경남 차장 knlee@pckworld.com

나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미소 짓는 아버지의 얼굴. 아버지의 물음을 잠시 감상하고 있는데, 순간 집 뛰쳐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돈을 모아가지고 멀리 떠나버린 아들, 그 아들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알았을까.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아들아, 너 어디쯤 왔니?"라고 묻고 또 묻는다. 뒷짐 지시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멀리 바라보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여전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삶의 용기와 위로와 희망은 시작된다.
 
어느새 입추가 지났다. 참기 어려운 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고 있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휴가를 보내는 인파로 부산 해운대에 50만명이 몰렸다고 하는데, 그들도 왔던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방학을 맞았던 아이들도 학교로 돌아갔고 돌아갈 것이다.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필자 또한 곧 방학이 끝나 또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된다.
 
뜨거운 7월과 8월을 보내고 가을이 오는 9월을 맞이하게 되고 어느새 올해도 추수해야 할 시기로 접어든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새로운 결단을 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남은 한 해는 더 열심히 살아가자, 그래서 좀 더 나은 상태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각오로 생활을 정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분주한 일상생활에서의 분투도 보다 "얘야, 너 지금 어디까지 왔니?"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또다시 바쁜 일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그래도 올해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우리가 성취한 물질적인 것들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얘야, 너 지금 어디까지 왔니?"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 느끼고자 하는 것일까. 혹시 하나님께서 분주히 살아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지는 않으실까 두렵다. "애야, 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니?"

장보철 교수/부산장신대학교 목회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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