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빚' 보다 '햇빛'

'핵빚' 보다 '햇빛'

[ NGO칼럼 ] NGO칼럼

김성희 상무
2015년 07월 21일(화) 13:53

"핵빚보다 햇빛". 태양광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들이 최근 캠페인에 들고 나온 슬로건이다. 해가 길어졌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채 식지 않은 태양이 서서히 사위어 가는 모습도 장관이다. 꿈틀대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한 여름에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일조 시간이 짧은 북유럽에서 해가 긴 하지 때 축제를 벌이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톰 하트만은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에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태양이라고 설명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다. 우리가 먹는 곡물과 채소는 물론이고 고기로 먹는 가축들도 형태만 바뀐 태양 에너지라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와 햇빛으로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산소는 방출하고 탄소로 제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탄수화물을 만드는 것이 지구 생명들의 먹이사슬을 지탱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뭇 생명들이 모두 서로 연결된 채 태양에너지의 힘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우리의 식습관이나 에너지 소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아내는 매월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시험 성적표 대하듯 한다. 이번 달에도 흡족한 얼굴이 다. 우리 집에서 쓴 개별 전기 요금은 3만 원이 넘지 않는데, 동일 면적의 다른 세대 평균보다 늘 만 원 가까이 적게 나온다며 벙긋 웃는다. 스무 살이 넘은 두 딸과 우리 부부, 4인 가족이 쓰는 전기 요금이 그렇다. 작은 냉장고를 고집하고, 집요하다 싶도록 집안 구석구석 플러그를 뽑고, 텔레비전은 거의 틀지 않으며, 에어컨은 아예 들인 적도 없고, 있는 전등도 모두 LED로 바꾼 결과일 터이다.

전에도 특별히 에너지를 낭비한 것은 아니지만 후쿠시마 사고와 밀양 송전탑 싸움을 지켜보면서, 아내의 노력은 훨씬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우리 같은 가정의 노력이 무슨 큰 영향을 주었겠는가만, 최근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는 추이라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정부는 전력 수요가 매년 2.2%씩 계속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핵발전소 2기를 새로 짓는 내용이 포함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전기요금 인하 방안도 내놓았다. 서민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전기를 많이 쓰는 상위 30% 가계에만 인하 혜택이 주어질 뿐이라 설득력이 없다. 최근 신재생에너지 판매 가격마저 폭락하고 있어,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세운 1만 여 개 이상의 햇빛발전소들조차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핵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전기 소비를 절제하거나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유도하기보다 핵발전소를 짓고, 발전소 증설 계획에 맞춰 전기 소비를 부채질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하기 어렵다.

톰 하트만은 인류가 목축을 시작하며 다른 생물의 태양에너지를 빼앗아 쓰기 시작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래된 과거의 태양까지 마구 잡이로 꺼내 쓰기 시작하면서 지구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4억 년 전 지구를 뒤덮었던 거대 식물들에게 응축되었던 과거의 태양에너지인 석탄과 석유로 만든 문명이 지구의 미래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말, 날로 심해지는 기후변화 때문에라도 더 잘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태양에너지가 집약된, 또 다른 형태의 식물이랄 수 있는 고기 소비가 폭증하면서 열대 우림이 파괴되고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급증하는 온실가스 문제는 또 어떤가. 지금 우리 세대가 지구상에서 단기간에 진행한 놀라운 생명파괴를 돌이켜보면, 과연 저 태양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안전하게 있어 줄 것인가. 행복은 욕망을 무한 충족시키는 데서 오지 않는다. 절제와 균형, 주변과의 조화, 미래의 희망을 위해 노력해야만 온다. 전기 고지서가 던져주는 잠언이다.

김성희 상무 / 한살림연합 기획홍보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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