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캐럴(carols)의 역사와 신앙적 유익

<26> 캐럴(carols)의 역사와 신앙적 유익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
2015년 07월 06일(월) 17:55
▲ 킹스칼리지 성탄절 이브 캐럴예배 장면. 찬양대에 대학생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참여하며, 해마다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거리마다 캐럴이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임과 기다림으로 채웠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성탄이 다가와도 거리는 물론 교회에서 조차도 캐럴을 듣기가 쉽지 않다. 성탄은 기쁨의 절기이고, 노래는 그 기쁨을 극대화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자 또한 가장 정직한 표현이기에, 캐럴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

어원들에 따르면 '캐럴(carol)'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춤과 노래를 말한다. 그래서 반드시 종교적 의미에만 제한되지는 않지만 주로 성탄과 관련된 즐거운 노래로 이해된다. 그러나 반드시 성탄에만 제한되지 않기에 부활절 캐럴도 가능하며, 성탄주기 안에서도 대림절, 성탄 이브, 성탄절을 위한 별도의 캐럴들이 가능하다. 이 때 각 내용들이 서로 구별될 필요가 있는데, 성서정과를 반영하면 효과적이다.

AD 129년, 목자들이 목격한 '천사의 합창'이 성탄예배에서도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로마의 한 주교의 지침이 성탄 캐럴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또한 760년에 예루살렘의 코마스라는 사람이 그리스 정교회를 위해 성탄찬송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유럽으로 전해졌고 9세기에는 유럽의 많은 작곡가들이 성탄 캐럴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 라틴어로 쓰였기에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13세기에 이르러는 성탄축하 자체에도 크게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가 1223년 이태리에서 성탄연극을 시작할 때 그 속에 자국어로 된 캐럴들을 많이 포함시켜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는데, 이 캐럴들이 프랑스, 스페인, 독일과 다른 유럽들로 빠르게 퍼졌고 그 이후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캐럴들이 창작되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시대 이후로 비사실적이고 오락적인 캐럴들이 많이 생겨났고, 이것들이 도시를 순회하던 가수나 음악가들에 의해 여러 지역의 언어로 빠르게 소개되었다. 크롬웰과 청교도인들로 인해 한 때 영국에서 성탄축하와 캐럴을 부르는 것이 금지된 적도 있지만, 캐럴은 빅토리아 시대에 지역 인사들의 재정적 후원까지 얻어 캐럴을 위한 밴드까지 형성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다시 얻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많은 종류의 캐럴들이 발달했지만 가장 잘 알려진 캐럴의 형태는 잉글랜드의 '성경 읽기와 캐럴들의 축제'인데, 아홉 번의 성경읽기가 병행되는 유형이다. 이것은 9세기 말에 처음 만들어졌고, 1918년 케임브리지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예배를 위해 좀 더 단순해졌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림절 캐럴 예배들은 이런 유형들을 개작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캐럴들은 여전히 서구 유럽의 유산들이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들을 참고하면서 한국교회들도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는 캐럴들을 많이 개발하여 예배음악이 전하는 신앙적 부가가치들을 회복해야 한다. 캐럴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다시금 교회에서 기쁨의 노래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편 크리스마스 찬송과 캐럴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만일 어떤 캐럴의 노랫말이 예수 탄생에 관한 성경적 선포를 담고 있다면 찬송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캐럴의 내용이 공예배에 적절한지는 언제나 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명실 교수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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