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6월 1~6일

[가정예배] 6월 1~6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5월 27일(수) 09:54

월-가정과 교회
본문 : 엡 5:22~27
찬송 : 210장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령한 축복,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어떤 복을 주셨는가? 본문은 그 풍성하고 충만한 삶의 비밀들을 우리에게 열거하면서 건강한 가정생활, 건강한 교회생활이 삶의 부요의 원천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정과 교회 왜 중요한가?
 
첫째,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조직체들이 있다. 학교, 직장, 사업체, 많은 사회봉사 기관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사람이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신적 기관은 가정과 교회이다. 인류의 역사에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창조의 사건과 십자가(구속)의 사건이다. 창조사건의 완성을 통해서 가정이, 십자가 사건의 완성을 통해서 교회가 출생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의 상호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생활에서 축복을 누리면 그것은 교회생활로 끝나지 않고 그 축복은 반드시 가정으로 흘러가 가정생활의 축복이 된다. 또 가정생활의 부요는 결코 가정생활에 국한 되지 않고 그것은 반드시 교회생활에 축복이 된다. 본문에 보면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배워야 한다고 바울사도는 가르치고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심 것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 부부 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룩함에 있어야 한다. 거룩이 없는 부부의 관계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차단해 버린다. 주님이 그의 교회를 거룩하게 세워주시기를 원하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를 말씀으로 섬기고 거룩하게 세워갈 때 남편과 아내 사이는 한없는 은혜의 통로가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복된 가정이 모이는 곳엔 복된 교회가 만들어진다. 가정과 교회는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가 서로 흘러가는 은혜의 통로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가장 위대한 자산은 자녀이다. 부모된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자녀들만 양육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역사의 미래를 양육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고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위대한 자산은 누구인가?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에서도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의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잘 훈련되고 교육되어 하나님 나라의 주역으로 쓰임을 받도록 우리의 가정생활, 우리의 교회생활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교정되고 헌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새롭게 결단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듯 우리 가정에도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가정과 교회를 굳게 세워주시고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주연 목사
세계로교회

화-에녹과 므두셀라
본문 : 창 5:21~24
찬송 : 430장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족보가 나온다. 가장 짧게 산 사람은 에녹, 가장 오래 장수한 사람은 므두셀라이다. 이 둘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짓는다.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끝이 온다'이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가장 오래 산 것은 이름의 덕분은 아니다. 심판을 미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다.
 
65세까지 자기 마음대로 살던 에녹은 아들이 태어난 기쁨보다는 아들이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알고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매일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다. 에녹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바로 아들의 출생이었다.
 
부모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부모들은 아들을 낳고 정신을 차린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참된 인생과 가정이 되는 것이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첫째, 하나님과 '뜻'이 같다는 말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시면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되기를 원하셨다. 내 뜻 내 주장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동행이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를 삶속에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저 멀리 하늘에만 계신 분이나 관념만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 어디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다고 믿고 사는 것이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믿고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동행이다.
 
셋째, 경건하게 사는 것이다.
 
모든 일을 나의 유익이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것이 경건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어려운 자를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 경건이다.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며 그 기도와 말씀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것이 경건이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여 행복하길 바란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아버지가 되자. 세월을 아끼며 헛되이 살지 말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에녹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은 것처럼 우리의 삶도 완전히 변화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손을 꼭잡고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광환 목사
동현교회

수-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본문 : 느 2:1~10
찬송 : 505장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위로자로 오셨다. 예수님의 위로는 근본적으로 뿌리 뽑고, 영원토록 재발하지 않게 만드는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 오염되고, 썩은 그 곳을 드러나게 만드는 위로다. 그래서 예수님의 위로는 '죄에 대한 용서'였다. 죄를 드러내시고 드러난 죄를 치료하시는 진정한 위로였다. 만약 주님의 위로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위로가 없으면 영이 불안해진다. 마음에 평안함이 사라진다. 지금 무언가 불안하다면 주님 앞에 앉아서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애통해 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의 위로를 반드시 얻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이 시대에도 위로가 없다고 느낀다면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대, 이 세상의 위로를 구하기 위해서 누가 애통해야 할까? 내가 이 세상, 이 민족, 공동체의 죄에 대하여 대신 애통해 하면 된다.
 
느헤미야도 죄 때문에 받게 된 민족의 아픔을 보고, 조국의 처참한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며 애통해 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죄를 대신 안았다. 자신의 죄처럼 기도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는 놀랍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다. 그런 그가 오랫동안 애통한 마음의 기도 때문에 얼굴에 수심이 저도 모르게 가득 차 그만 표가 나고 말았다. 아닥사스다왕이 얼굴에 왜 수심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 말에 느헤미야는 두려워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순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나를 보내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담대하게 말했다. 놀랍게도 왕이 이를 허락한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가 자신의 죄로 애통해하면 자신에게 복이 있고, 그가 공동체의 죄로 애통해하면 공동체에게 복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하며 하나님을 찾는 의인 열 명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하나님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의 자녀를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만든다. 느헤미야는 닥사스다왕에게 통행조서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할 수 있는 목재를 달라고 요청한다.
 
회개로 애통해 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결코 벌하지 못하신다. 오히려 그를 용서하시고 위로하시는 복을 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의 욕심을 채우려 한 죄 때문에 애통해 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주성 목사
광주서석교회

목-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라
본문 : 엡 6:7
찬송 : 336장

카알 아이들맨이 쓴 '팬인가, 제자인가'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만약에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오셔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 썩 물러가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두려운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주님을 섬기는 교회와 가정이 진정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할까 반문해 본다.
 
사도 바울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6)"고 했다.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울 때가 있다. 우리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섬긴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일까? 반성해 본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뜻을 이루셨다. 우리는 어떠한가? 진정 섬김을 좋아하는가?
 
모든 이들이 지도자의 위치를 선호하지, 낮고 섬기는 위치를 꺼려한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처럼 섬기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는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길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나 자신만의 예수님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구원의 예수님이 되도록 섬기면서 살 때,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야 한다. 나의 자존심이 죽고 예수님의 사랑이 샘솟아야 한다.
 
바울은 가정과 일터와 모든 관계에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원리적인 권면을 하고 있다.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와 남편이 서로 존중해 주며 서로 섬기듯이 사는 것이 복음적이다.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존중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종답게 섬기면서 살아가야 마땅하다.
 
왜 세상 사람들이 '개독'이라는 말을 할까? 그것은 화력은 없고 재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불이 붙은 장작은 뜨거워 만지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재는 열이 식었다. 기독교인들인 우리들이 성령의 불길은 타오르지 않고 타다가 중단된 재가 되었기에 힘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보고 두려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향한 열정도 예배의 열정도 식어버렸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처럼 성령충만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바로 섬겨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회복해야 한다. 영성이 넘치는 가정예배로.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섬겨야 세상이 변한다. 자아의 욕망 대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발을 씻기는 섬김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들은 대접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겸손의 자리로, 섬김의 자리로 나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은석 목사
신리교회

금-부부의 도
본문 : 창 2:18~25
찬송 : 558장

한 일본학자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일본은 교과서 없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데, 한국은 일본이란 교과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교과서만 가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 거기서 배운 후 실행하지 못할 바에야.
 
오늘날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사회적 병증은 일본이 먼저 경험한 것들이다. 이지매 현상이 우리에게는 왕따로, 니트족이 우리의 청년백수 혹은 캥거루족이란 이름으로 문제가 되었다. 황혼이혼이란 이상한 말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의 병적 현상의 근원에는 부의 편중과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와 가정의 파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땅히 이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고 성서적 시각으로 사회를 향해 말해야 함은 물론이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가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율 세계 최고임은 이제는 뉴스거리도 못된다. 가정의 모든 관계가 다 중요하지만 특별히 부부의 관계는 모든 관계의 중심이기에 건강한 부부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첩경이 되리라. 본문에 부부의 도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먼저 하나님은 사람이 혼인하여 같이 살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하나님은 좋지 않게 보시고 돕는 배필을 준비하신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로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건강한 부부의 도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첫째는 남녀의 근본이 동일함을 말한다. 23절에 아담이 하와를 향해 "남자에게서 났으니 여자라 하리라"고 한다. 히브리 말로 남자는 'Ish', 여자는 'Isha'다. 같은 어근이니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다만 인간이 타락한 후 주님은 여자를 남자의 권위 아래 두시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아내가 자신을 남편의 권위 아래 두고 살면서 점차 하나님의 원래 창조의 원형인 동등성을 회복하도록 해야 하리라.
 
두 번째는 부모를 떠나야 건강한 부부관계를 이룰 수 있다. 많은 경우 친정, 친가를 떠나지 못하는 젊은 부부를 본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루려면 반드시 쌍방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부부 간에 문제가 생겨도 부모를 찾지 말 것이요, 부모들도 자식들의 문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을 지으실 때 아담은 흙으로 하와는 뼈로 만드셨다. 원료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만큼 남녀는 서로 다르다.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해야 평화가 깃든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길 안에서 건강한 부부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진숙 목사
거창영락교회

토-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본문 : 삼상 7:7~14
찬송 : 70장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말하는 사무엘의 벅차오르는 감격의 고백이 담겨 있다. '여기까지'라는 이 네 글자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넓이와 깊이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철저하게 무너지고 망가져 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블레셋을 물리치고 떳떳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하심이 네 글자 안에 담겨 있다.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셨나?
 
이스라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여인과 같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용사 삼손을 블레셋의 손에 팔아넘기는 자들이었다. 여호와의 궤까지 블레셋에 빼앗기는 순간 이스라엘의 허울뿐인 신앙은 그 밑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아무런 구원의 소망이 없는 자기 백성의 슬픔과 애통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은 찾고 계셨기에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것이다. 이가봇의 시대,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상실한 소망없는 시대에 하나님은 아이없는 한 불쌍한 여자의 자신의 심장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제물로 받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은 보잘 것 없는 한 여자의 헌신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삼손을 팔아넘기던 이스라엘, 수치를 모르던 백성, 다른 지파의 고통에 무감각하던 사람들이 사무엘의 말씀을 통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기 시작했다. 블레셋이 두려워 감히 한 데 모이지 못하던 백성들이 한 데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하며 그들이 오직 하나님의 구원에 목숨을 걸고 모여 기도했을 때 그들의 대적은 이스라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죽은 이스라엘을 깨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세우시기까지, 바로 여기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돕고 계셨다. 이것이 한나의 아들 사무엘의 위대한 고백인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그저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내 안에서, 나의 가정에서,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이 나라에서 아무런 소망을 발견할 수 없기에 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은 내게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내 입술에서 한나의 고백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은 바로 그때 시작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기다리자.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이가봇의 시대라고 절망하지 않고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도원 목사
작은빛선교교회(대구소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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