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독자투고
아버지! 저에요, 막내아들. 따뜻한 햇살이 예쁜 오월 마지막 주간, 아버지 누워 계신 곳에 가족과 왔습니다.
요즘, 고향 들녘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랍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만 해도 들녘에 사람들이 늦게까지 있었죠.
지금은 모내기철이라고 해봐야 허리 휜 어르신들 몫이 되어 이양기로 심어버리니 그 정겨운 모내기 시절은 옛날 교과서에나 나오게 됐죠. 어릴 적 모내기철에 엄마 따라 논에 함께 갈 때, 줄 꾄 바가지 매고, 엄마 누나 동생 이웃 아줌마들 광주리에다 콩 볶음, 가죽자반, 머윗대 반찬 얹어 노란 양동이에다 막걸리 들고 그렇게 모내기 마치면 하루에도 수없이 논밭을 들리셨던 엄니 아부지.
제 나이 50이 넘었어도 아직도 엄니 아버지에게 매달려 어리광 부리고 싶은데…. 제 곁에 안 보이시고, 안 계시니 오늘은 일부러 부모님 계신 곳 앞에서 머리 숙여 봅니다. 아들 딸 다 공부 마치고 취업하여 서울에서 살구요. 저희들 내외 엄니 아버지 보고 싶어 여기 왔습니다.
생전 한 겨울에도 감기 한번 안 걸리신 두 분. 잔디에 새싹 돋기를 어언 10여 년. 우리 집은 동네에서 꽃집, 교회 집으로 소문난 집이었지요. 이때쯤이면 저희 집 마당은 온통 꽃밭이었지요. 백합 채송아 사루비아 등으로 가득했지요. 이 모두가 부지런한 우리 아버지 엄니 덕이었답니다. 병들어 몸 불편하시면서도 마당에 잡초하나 보이지 않던 우리 집.
매 주일 남보다 일찍 예배당 가신다며 아침식사 후부터 서두르신 아버지. 몸 불편하시어 팔 잡아 드리면 혼자도 간다시며 떨치시던 독립심과 자립심이 강하신 우리 아버지. 자녀들이 어려우면 저녁 내내 뜬 눈으로 잔기침 하시며 지새우신 우리 엄니 우리 아버지.
지금에서야 두 자식 낳아 길러보니 그 심정, 그 정성, 그 사랑에 고개 숙입니다. 불효자인 저였습니다. 왜 그리 철이 없었던고. 무던히도 병든 부모 마음 아프게 했던 불효자였습니다. 하늘 나라 가신지도 엄니 30여 년, 아버지 20여 년. 간혹 이곳 찾아 지난 날을 후회하며 고백하건만 휭 하고 바람만 세월만 귓전에 울립니다.
옛말에 인사유명 호사유피(人死有名 虎死留皮)라 했거늘 우리 집 6남매는 그 후손이 자그마치 현재 60명. 목사 2명, 목사 부인 2명, 장로 4명, 권사 6명, 집사 15명, 교회학교교사 10명, 교회 피아노 반주자 5명.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아버지 엄니 천국에서 만나요. 오늘은 좋은 날, 내일은 더 좋은 날.
심정보 목사/용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