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전상서

[ 기고 ] 독자투고

심정보 목사
2015년 05월 26일(화) 16:50

아버지! 저에요, 막내아들. 따뜻한 햇살이 예쁜 오월 마지막 주간, 아버지 누워 계신 곳에 가족과 왔습니다.
 
요즘, 고향 들녘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랍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만 해도 들녘에 사람들이 늦게까지 있었죠.
 
지금은 모내기철이라고 해봐야 허리 휜 어르신들 몫이 되어 이양기로 심어버리니 그 정겨운 모내기 시절은 옛날 교과서에나 나오게 됐죠. 어릴 적 모내기철에 엄마 따라 논에 함께 갈 때, 줄 꾄 바가지 매고, 엄마 누나 동생 이웃 아줌마들 광주리에다 콩 볶음, 가죽자반, 머윗대 반찬 얹어 노란 양동이에다 막걸리 들고 그렇게 모내기 마치면 하루에도 수없이 논밭을 들리셨던 엄니 아부지.
 
제 나이 50이 넘었어도 아직도 엄니 아버지에게 매달려 어리광 부리고 싶은데…. 제 곁에 안 보이시고, 안 계시니 오늘은 일부러 부모님 계신 곳 앞에서 머리 숙여 봅니다. 아들 딸 다 공부 마치고 취업하여 서울에서 살구요. 저희들 내외 엄니 아버지 보고 싶어 여기 왔습니다.
 
생전 한 겨울에도 감기 한번 안 걸리신 두 분. 잔디에 새싹 돋기를 어언 10여 년. 우리 집은 동네에서 꽃집, 교회 집으로 소문난 집이었지요. 이때쯤이면 저희 집 마당은 온통 꽃밭이었지요. 백합 채송아 사루비아 등으로 가득했지요. 이 모두가 부지런한 우리 아버지 엄니 덕이었답니다. 병들어 몸 불편하시면서도 마당에 잡초하나 보이지 않던 우리 집.
 
매 주일 남보다 일찍 예배당 가신다며 아침식사 후부터 서두르신 아버지. 몸 불편하시어 팔 잡아 드리면 혼자도 간다시며 떨치시던 독립심과 자립심이 강하신 우리 아버지. 자녀들이 어려우면 저녁 내내 뜬 눈으로 잔기침 하시며 지새우신 우리 엄니 우리 아버지.
 
지금에서야 두 자식 낳아 길러보니 그 심정, 그 정성, 그 사랑에 고개 숙입니다. 불효자인 저였습니다. 왜 그리 철이 없었던고. 무던히도 병든 부모 마음 아프게 했던 불효자였습니다. 하늘 나라 가신지도 엄니 30여 년, 아버지 20여 년. 간혹 이곳 찾아 지난 날을 후회하며 고백하건만 휭 하고 바람만 세월만 귓전에 울립니다.
 
옛말에 인사유명 호사유피(人死有名 虎死留皮)라 했거늘 우리 집 6남매는 그 후손이 자그마치 현재 60명. 목사 2명, 목사 부인 2명, 장로 4명, 권사 6명, 집사 15명, 교회학교교사 10명, 교회 피아노 반주자 5명.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아버지 엄니 천국에서 만나요. 오늘은 좋은 날, 내일은 더 좋은 날.

심정보 목사/용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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