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5월 25~30일

[가정예배]5월 25~30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5월 20일(수) 16:44

월-아론 자신을 위한 제사
본문 : 레 9:1~14
찬송 : 421장

레위기 9장 1-7절에서는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 회중의 장로들을 불러 자기들을 위한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리라는 명령을 기록하였다. 신약적으로 아론은 성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자기를 위한 제물을 드렸음은 예수님 자신이 완전한 제물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제물을 드렸다. 예수님 또한 철저히 하나님이 뜻대로 사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기까지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셨다.
 
구약에서는 속죄제의 피를 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 신약에서는 속죄를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능력을 상징한다.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능력을 의지하는 성도의 예배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약적 의미를 살펴보자. "이에 아론이 제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가져오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고…" 여기서 피를 바르는 '제단 뿔'은 성소와 성막문 사이의 뜰에 있는 번제단의 네 귀퉁이 뿔을 의미한다. 일반 속죄제의 경우는 '성소 안에 있는 향단의 뿔'에 피를 발랐다. 본문의 속죄제는 제사장의 원죄와 관련된 것이기에 번제단 뿔에 피를 바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를 제단 밑에 쏟음은 속죄제로 바쳐진 희생 제물이 제물을 드리는 자, 즉 제사장으로 임직 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 속죄를 위해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를 흘렸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약적 규례의 의미는 신약에 가서 확연하게 밝혀진다.
 
신약적 의미를 살펴보자.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제사장 임직식 이후 아론과 그 아들들이 속죄제 제물을 잡고 그 피를 제단 뿔에 바르고 제단 밑에 쏟은 것은 신약적으로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의미한다. 과거 구약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원죄가 있기에 피의 능력을 의지하여 거룩한 직임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 예수님 피는 사죄의 역사를 이룬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쏟아 우리의 속죄를 이루신 것, 우리의 죄된 본성을 거룩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다. 예배의 길이 열렸다는 의미이다. 그 길을 여셨으니 어찌 우리가 잠잠히 있을 수 있는가? 주님의 속죄 은혜로 인한 거룩한 담력을 가지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영과 진리의 참 예배를 드리자.
 
오늘의 기도
 
온전한 가정 제단을 쌓음으로 나라가 형통하는 복을 허락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은석 목사
신리교회

화-올라가야 할 때
본문 : 창 35:1~15
찬송 : 338장

야곱에게도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세겜 땅에 정착하여 평안한 삶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딸 디나가 주민 추장 세겜에게 욕보임을 당하게 된다. 야곱의 아들들은 참지 않았다. 평화가 전쟁이 되었고, 보복의 염려로 인해 정착민에서 또 다시 나그네로 바뀌게 될 처지가 되었다.
 
문제는 더 큰 문제가 되었고, 아버지 야곱의 성품은 이제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야곱 자신이었다.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여 확인받은 가문의 축복, 하나님의 약속은 까맣게 잊고, 여전히 두려워하며 조급했다.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에게는 변화와 축복을 누릴만한 자질과 믿음이 없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그릇이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그제야 야곱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집 벧엘로 돌아가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다. 원래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야곱의 서원이었다. 30년 전,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그 밤, 이곳에서 제단을 쌓겠노라던 그 서원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축복은 받고 감사는 잊어버렸다. 가로막아선 삶의 문제만 보고 피할 길 앞에 서 계신 하나님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부귀영화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동행하심 그 자체가 축복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이다. 벧엘로 반드시 올라가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품과 신앙마저 닮아가고 있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야곱이 가족의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또한 야곱이 가족들의 우상숭배를 알면서도 용납하고 있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가족에게 빚진 마음으로 인격과 신앙 모든 면에서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곱처럼 선포하라. 첫째, 이방신상을 버리라고 해야 한다. 둘째, 정결하라고 말해야 한다. 악을 멀리하도록 선포하라. 셋째,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하라.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벧엘은 어디일까?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우리의 순종의 약속이 만났던 자리이다. 우리의 순종과 감사를 가지고 속히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지만,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주성 목사
광주서석교회

수-하나님의 사람이 사는 법
본문 : 삼상 2:1~26
찬송 : 328장

하나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사람이 등장하고, 세상이 혼돈할수록 하나님의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주님은 그에게 에덴동산을 경영토록 하셨다. 아담 이래로 주님은 사람을 찾아 세우신 후 그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다.
 
이스라엘의 혼돈은 아합왕 때 극에 달했는데 그 때 주님은 엘리야를 세우셨다. 이 어려운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워 새 일을 시작하신다. 그의 출생은 원수들의 위협 앞에 노출된 이스라엘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 말해준다. 본문이 전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한나를 통해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서 무시당하는 자, 힘없는 자에 대해 한없이 자비로운 분이심을 증언한다. 그 증언이 한나의 기도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한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하여, 또 기름부음 받은 자인 왕에 대하여 노래한다. 그렇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은혜로써 그들을 먹이시고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아래 사는 아주 대조적인 두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첫 사람은 엘리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패역은 필설로 형용키 어렵다.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고기의 일부를 가질 권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제사장의 권력을 남용하여 제물을 먼저 가로챘다. 뿐만 아니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패악까지 저질렀다. 이들의 악행이 스스로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정한 한계를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한 사람 사무엘의 행적과 훈련은 엘리의 아들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엘리 문하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훈련과 제사장의 실행을 훈련받고 있었다. 이런 훈련 덕분에 사무엘의 사역은 평생 지속적일 수 있었다. 썩 훌륭하다 할 수 없는 엘리 아래서 사무엘은 훈련받지만, 엘리 가문의 하락한 모습을 목격하면서 지속적으로 경고를 받았으니 이야 말로 타산지석의 훈육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영적 예민함과 통찰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든 사건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제 엘리의 아들들과 후손을 버리시고 사무엘을 통해 새 역사를 이어 가신다. 사무엘 그는 시대를 전환시킨 사람이요, 진부하고 하락한 아론의 제사장 체계를 대치한 인물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오늘의 기도
 
오 주여, 어두운 이 세상 가운데 주의 나라 세워갈 주의 사람으로 우리를 훈련하시고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본문 : 삼상 7:3
찬송 : 94장

오늘 말씀에는 한나가 기도로 낳은 아들 사무엘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최후의 사사로서 신정 정치에서 왕정 정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이스라엘의 신앙과 생활을 지도한 경건한 신앙지도자이자 이웃 강국인 블리셋의 압박으로부터 민족을 구해 낸 정치지도자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초기의 이스라엘은 약 340년 동안 죄와 회개를 반복하는 역사 속에서 외세의 침략과 압제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


가나안 땅 원주민들의 타락한 우상 종교와 문화에 심취하여 악습을 본받았고 특히 가나안 신 바알 숭배가 만연했다. 자신들의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이방 나라의 침략이 잦았고, 그로 인해 고통이 극에 달했던 것은 당연했다. 죄악과 우상숭배로 인해서 고통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했고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해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오늘 본문의 사무엘은 이러한 악순환의 역사를 되풀이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이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올 것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하게 돌아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것은 첫째, 이스라엘 족속들 속에 만연해 있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둘째는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는 것이다. 셋째는 오직 단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 우리들 삶 속에도 반복됨을 보게 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열심히 외치지만 우리의 마음은 맘몬 신과 세상 것들에 미혹되어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보시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고 살 때가 많다.
 
죄악이 만연해 있는 이 시대에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을 바란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역사하시게 하려면 여전히 한 쪽 손으로 붙들고 있는 세상 욕심과 죄악에 젖은 생활을 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적당히 걸치고 살아가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우리 역시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해야 하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과 겸하여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은밀한 죄악을 품고도 늘 적당히 살아도 괜찮은 것처럼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 거룩한 슬픔과 애통함을 회복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만 섬기는 참 신앙의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도원 목사
작은빛선교교회
(대구소년원)

금-가정의 비전
본문 : 시 127:1~5
찬송 : 555장

사람들이 한 평생을 살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바로 이 가치가 출발하는 곳이 가정이다. 그런데 오늘 그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가정의 비전, 어떠한 것인가?
 
첫째, 하나님의 설계를 실현하는 가정이다. 가정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하나님보다 더 좋은 설계자, 더 완벽한 설계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행복한 가정을 소원해도 하나님이 세워주지 아니하시면 이 모든 것은 헛되다. 지금 가정들은 왜 위기를 겪고 있는가? 전통적 가정을 보면 그들을 지배한 것은 유교적인 가부장 문화로 모든 결정권이 그 집안의 호주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 전통적 가정이 깨어지기 시작하면서 현대적 가정은 사사시대와 같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므로 구심점이 없고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성경적 가정은 어떠한가?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정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뜻을 수용하는 가정이다.
 
둘째,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가정이다. 하나님이 세워주지 않고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지 않는다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고하는 우리의 모든 땀 흘림이 헛될 수 있다. 이것은 노동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우리의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정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면 행복의 에너지가 생겨 밖에서 일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고 그 노동의 대가로서 벌어들인 돈으로 가정에 와서 즐긴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함께 더불어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식구가 없고 이웃들이 없다면 노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셋째, 역사의 미래를 창조하는 가정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는데 그 땅을 다스리는 첫 번째 현장이 가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면 역사가 흔들리는 것이다. 역사의 미래, 교회의 미래는 모두 가정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필요한 애정과 도움을 주고 기도로 끌어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의 가정이 역사의 미래를 창조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비전을 함께 꿈꾸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이런 가정을 창조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가정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주연 목사
세계로교회

토-배워야 합니다
본문 : 요 14:25~27
찬송 : 191장

심리학 용어 중에는 '어른아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른인데, 그 속을 보니 아이같이 미성숙하다. 무책임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욕심을 부리고, 남탓을 하며 살아간다.
 
현대사회에는 이러한 '미성숙 어른'이 너무나 많다. 왜 이렇게 '미성숙한 어른'이 될까? 나이만 먹고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 배워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의 역활과 마음가짐과 행동함과 사고함을 배우고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하게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도 1년, 5년, 10년 믿음생활을 하였는데도, 속을 들여다보면 어린아이 신앙과 같이 미성숙하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배워야 하는가? 배움은 선생이 중요하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날 준비를 하시면서 걱정과 근심에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낼 것을 약속한다.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번역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helper(도우미), intercessor(중재자)이다. 보혜사는 곧 성령이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한다. 진리는 '참된 것'이며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성령님에게 배워야한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배움은 훈련이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배움의 목적과 내용이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첫째, 겸손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배우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야 한다.
 
둘째, 사랑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을 배워야 한다. 내 방식의 사랑이 아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셋째, 평안이다. 세상은 두려움과 근심으로 준다. 성령은 평안을 주신다. 근심과 염려가 닥칠 때 성령님을 의지하며 마음에 평안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넷째, 생명이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도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도와주고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성령님께 날마다 배우는 삶을 살고자 겸손히 성경을 펴고 무릎을 꿇자.
 
오늘의 기도
 
보혜사 성령에게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 주님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 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광환 목사
동현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