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예, 길 잊아뿟는교?"

"목사님예, 길 잊아뿟는교?"

[ NGO칼럼 ] NGO칼럼

김경태 목사
2015년 04월 28일(화) 17:17

초고압 송전탑에서 마을을 지켜내겠다고 구부러진 허리로 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한지 8년여, 그러나 밀양지역 초고압 송전탑 경과지의 모든 점거 농성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결국은 강제 추방되고 농성장은 해체되었다. 애초에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인 싸움이었지만, 그만큼 고향산천을 지켜보겠다던 '할매, 할배'들의 열정은 뜨거웠었다.

어언 십여 년의 세월에 허리는 더 굽어 이제 작대기 없인 마실도 나가기 어렵다. 이미 두 분의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내 놓으셨고, 공무집행 방해 등의 명목으로 청구된 벌금만 해도 수억 원에 이르러, 어르신들은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정신도 생활도 황폐해져 버렸다. 행정대집행이 있던 날 이후로 이들에게 길은 없어져 버렸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충격적이기도 했고 그것이 일시적이며 비정상적인 무엇일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 주제가 하나 있다. '한국교회 위기론'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숱한 진단과 처방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개선되거나 현상이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어 간다는 보고서만 쌓여갈 뿐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이탈이 급속화된 요 몇 년의 교회학교 통계를 보면 그저 가슴이 먹먹해 진다. 백약이 무효인 셈이다. 길이 없어 보인다고하면 과한 표현일까?

목회도 해야 하고 지역 일도 챙겨야 하는 핑계로 바쁜 어느 한 낮에 '밀양 할매'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인사 한 마디에 대뜸, "목사님예, 길 잊아뿟는교? 내가 갈카 줄까요?"라고 한다.

한 일 년을 식구처럼 지내왔었지만 행정대집행 이후론 거의 한 달에 한 번쯤이나 뵙곤 했었다. 그런 내가 무심하다고 생각되셨는지, 아니면 보고 싶으시다는 표현이신지는 몰라도. 내가 할매들에게 이런 인사를 받을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낯 뜨거움이 앞섰다.

그런데 할머니에게서 받은 인사가 머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맴 돈다. "목사님예, 길 잊아뿟는교? 내가 갈카 줄까요?"

최근 불교에서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라고 한다. 특히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1970-80년대 개신교와 1990-2000년대 천주교의 부흥인데, 그 때의 개신교와 천주교회는 당시 시대의 아픔과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응답하였다고 파악한다. 그것이 오늘날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로 조계종에서는 사회의 아픔과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2010년 '화쟁위원회'를 출범시킨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고, 그러나 다시 시작되는 길은 머물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닿을 수 있다고 백창우 님은 노래했다.

밀양 어르신들은 다시 일어 나셨다. 동네 철탑 반대하는 것에서 이제는 철탑이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해 할 일을 하시겠다고 하신다. 멈추지 않고 그 길을 새로이 가신다. 할머니께서 던지신 인사 한 마디가 그래도 끊이지 않고 머리 속을 떠다닌다. "목사님예, 길 잊아뿟는교? 내가 갈카 줄까요?"

김경태 목사 / 핵없는세상부산기독교연합회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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