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한국교회 (2)또 다른 아픔과 기억해야 할 일

세월호 참사와 한국교회 (2)또 다른 아픔과 기억해야 할 일

[ 특집 ]

오현선 목사
2015년 04월 14일(화) 14:09

오현선 교수
호남신학대학교ㆍ기독교교육학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은 4월 16일, 부활주일을 앞 둔 고난주간의 수요일이었다. 큰 충격과 여러가지 엇갈리는 입장으로 온 국민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교인들은 강단설교에서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부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여러 교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공교회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언급은 했으나 사건의 피해자들을 공감하지 못해 2차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사건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채 잊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일들을 방치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이에 우선적으로 한국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 가족을 기억하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수천 수만 가지의 일과 말들이 생겼지만 처절한 부모의 목소리처럼 분명한 것은 없다. 가족들은 우리에게 기억해달라고, 선체 인양에 힘을 실어달라고, 이 참사의 증인이 돼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증인(witness)'은 '함께하는 것(withness)'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고 그들의 곁으로 가서 함께 있어야 한다. 귀한 생명들이 죽었고, 그 가족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에 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그들을 돕는 일이 교회와 성도의 일이다.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은 한국교회에 '공감 학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산상수훈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전함으로써 생명, 평화, 정의적 관점에서의 인격적 친절함에 대해 가르친다. 한 예로 예수님은 먼 길의 동행을 서슴지 말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려면 연구하고 더 배워야 한다. 학습이 없는 주관적 공감은 세월호 사건처럼 피해자와 희생자들의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상대의 감정을 내 마음대로 추측하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더욱이 내가 가진 감정이 '그들을 위한 감정'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설령 상담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더 세심한 태도로 스스로의 생각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그들에겐 '괜찮아요?', '힘내세요!', '아이들은 천국에 있을 거예요' 등의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판단 없이 아무 말 없이 지지하고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주고 곁에 있어주는 일이 서로 수용할 만한 인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넷째,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신앙적, 윤리적 잣대를 내세우지 않을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우리가 납득할 수 있게 행동하라"고 말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을 향해 '이제는' '그래도' '믿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지' '그럴 때가 아니지' '믿음을 지켜야지'하며 신앙적,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임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가족들은 지금 상담이나 치유를 받기 힘든 상황임을 기억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동일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분명하게 진행될 때, 비로소 가족들은 자신들을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공감과 연대 없는 치유는 의미가 없다. 문제 해결과 상담을 단계적 과제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지원을 하려는 전문가와 교회들이 희생자의 관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존자와 가족 등 세월호 관련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영구화하지 않을 수 있다. 

애도 과정의 실패는 트라우마를 영구화할 수 있기에 진상 규명과 실종자를 모두 찾는 일 자체가 애도 과정에 포함됨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가족들의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건강을 위한 애도과정에 통념적 시간과 기간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애도를 어렵게 하는 각계 각층의 무지한 입장들을 계도하는 방식으로도 참된 애도를 지켜가야 한다. 예배도, 기도도, 대화도, 상담도 가능한 시기는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며 그때까지 사랑과 공감의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이 중요하다. 주디스 헐만(Judith Herman)은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도 필요하지만 공동체의 지지 역시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의 반응은 트라우마의 궁극적 회복을 위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사건에 대한 인식, 상처에 대한 책임, 상처 회복을 위한 노력을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필자는 교회가 일회성 지원보다 공적 인식의 연대와 회복을 위한 진지한 사역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유의 희망은 절망을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연대 없이 희망을 선포하면 절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기회마저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 

여섯째, 가족들이 필요한 부분을 조심스레 묻고 세심히 살펴 돕는 일을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교인들이 출석하는 교회는 교회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성숙한 성도 의식과 자원봉사 의식에 근거한 봉사활동이 필요하다.

1년 전 모든 국민이 세월호가 잠겨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 처절한 생명 상실에 발을 동동 굴렀었다. 무엇인가를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마음에 피해자들과 함께 안타까워했고 분노했고 아파했다. 1994년 성수대교붕괴, 1995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1998년의 경기여자기술학교 화재, 부산 냉동창고 화재, 1999년 씨랜드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등 사고가 계속됐고, 2014년의 경주리조트 붕괴, 세월호 침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장성효사랑병원 화재, 그리고 판교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사고에 이르기까지 불안, 절망, 우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사회를 향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계를 모르는 물질에의 욕망에 사로잡혀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맘몬화된 인간과 사회, 신앙 공동체는 결국 자신의 안전과 생명마저도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 교육학자 엘리스 넬슨(Ellis Nelson)은 "신앙이란 공동체에 의해 소통되는 것이며 신앙의 의미는 구성원의 역사와 상호간의 행동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관계성 가운데 발달한다"라고 했다. 사회적 위기, 생의 위기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처소,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 가족들의 뜻을 공감하며 그들 곁에 함께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임을 기억하자. 

지난 1년 동안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는가를 물었다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가 지난 1년간 어디에 있었는가, 앞으로 또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만하자며 세월호 참사를 잊고자 하는 것, 과거를 망각하는 것은 공감하고 함께 했던 자신의 기억, 감정, 관점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한국교회와 우리 스스로가 침묵했으면서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으로, 우리 스스로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생명 세상을 위해 하나님은 이미 그 독생자까지 내어 주셨는데 우리는 다시 또 한 번 구세주를 내어 놓으라 때를 쓰며 우리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