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한국교회 (1)세월호 사건, 그 후로 1년

세월호 참사와 한국교회 (1)세월호 사건, 그 후로 1년

[ 특집 ]

김은호 목사
2015년 04월 14일(화) 14:01

김은호 목사
안산희망교회ㆍ기장 생명선교연대 세월호대책위위원장

날씨가 좋아 모두들 아주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수학여행비가 없어 수학여행을 못갈 뻔했지만 이웃의 도움으로 참석한 친구, 별로 수학여행이 내키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설득으로 수학여행을 온 친구, 수학여행에서 보여줄 공연을 준비한다고 한 달 넘게 연습한 친구들, 그렇게 325명의 아이들이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여행길에 올랐다. 4월 15일 밤 9시 세월호는 인천항을 출발했고, 뱃고동 소리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이 배에는 생애 처음 배로 여행을 떠나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 외에도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제주도 관광을 가는 노인, 주기적으로 왕복하는 화물트럭 기사,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사하는 가족, 2박 3일간 세월호 식당에서 일하고 11만 7천원을 받기로 한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 총 447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4월 16일 아침이 밝아왔다. 바다는 신기할 정도로 잔잔했고 마치 호수와 같았다. 그런데 8시 49분 배가 왼편으로 약간 기울다가 갑자기 크게 기울었다. 그렇게 세월호는 비명과 신음소리가 넘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냉장고에 깔린 학생들이 있었고, 로비 기둥에 머리를 찧은 승객도 있었다. 하지만 배가 기울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9시 50분까지 '선내에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이 반복됐다. 그리고 해경 경비정 123정과 헬기가 9시 35분 경 세월호에 접근했다. 하지만 9시 38분경 기관부 선원들이 해경 고무단정을 타고 탈출했고, 9시 49분경 선장과 갑판부 선원, 그리고 필리핀 가수 부부를 구조한 123정은 세월호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결국 탈출 방송 한 번 하지 않은채 10시 14분 세월호는 물기둥을 뿜으며 침몰했다.

시시각각 아이들로부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단원고등학교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나왔다. 하지만 다시 진도로 향하던 차 안에서 시신이 인양됐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됐다. 그렇게 진도 팽목항에 도착한 부모님들은 250여 명의 아이들이 여전히 배 속에 갇혀 있는데도 아무런 구조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극심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직접 배를 타고 사고현장에 가서 울부짖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대낮, 잔잔한 바다에서 일어났던 세월호의 침몰사고는 이렇게 수많은 학생들의 생명과 함께 그들을 잃은 부모들,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 정부, 잘못된 보도로 오명을 남긴 언론까지 가라앉혔다.

그렇게 4월 16일 이후 단 한사람도 구조하지 못하고 9명의 실종자들을 남겨둔 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잘 듣겠다. 마지막 한 아이가 돌아오는 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가족들의 진상규명과 선체 완전한 인양 요청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의사자 인정을 비롯한 각종 배보상과 관련된 보도를 일삼아 여전히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4.16참사가 일어나자마자 안산 시민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피해 가족들과 함께해 주었다. 

인터넷 카페 '엄마의 노란 손수건'에 며칠 만에 수 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사건 진실규명과 잊지않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으며, 이외에도 전국에서 촛불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모임들이 진행됐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엔 350만 명이 동참했으며, 수도 없이 진행된 '유가족과 함께하는 국민 간담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짧지 않았던 지난 1년 동안 4.16 참사의 진실규명과 함께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된 것은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들의 헌신과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보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수장될 수밖에 없었는지'이다. 그 문제가 해결돼야 더 이상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우리나라를 더욱 안전하고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5년 1월에 피해 가족들은 모든 세월호 탑승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뜻을 한데 모으고 대변하기 위한 법적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가족대책위를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로 전환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으로 시작된 농성은 현재 광화문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특히 광화문에서는 유민 양의 부친 김영오 씨의 46일 단식이 진행됐으며,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던 유가족들은 길이 막히자 76일 간 노숙 농성을 벌이다가 풀기도 했다. 국민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각 지역에 있는 주민들 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도 조를 나눠 전국을 누비며 직접 서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4.16 참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눠왔다.

지난 11월 10일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더 이상 잠수사들의 희생을 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수색 종료에 합의했다. 하지만 수색을 진행할 때는 선체 인양을 말하던 정부가 이제는 선체 인양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다.  지난 1월 16일부터 '진실 규명'과 '선체의 완전한 인양'을 촉구하며 안산을 출발해 팽목항까지 450km를 걷는 가족협의회 분들의 20일간의 도보행진에 11일을 함께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여야 합의로 부족하게나마 통과된 특별법이 정부의 인력과 재정 축소 방침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국민들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잘 지켜봐 주기를 소망한다.

시간은 멈췄는데 시계는 자꾸 움직여 4.16 참사가 일어난지 1년이 되어 간다. 여전히 밝혀진 것도 해결된 것도 없다. 아직까지 구조되지 못한 9명의 시신이 차가운 바다 속에 남아 있기에 추모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국민들이 4.16 참사를 잊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작은 실천으로라도 보여주는 것이 1주기를 맞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우는자 들과 더불어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가장 아픈 곳인 4.16참사의 현장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직까지 실종자로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 20일 넘게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은화, 다윤이 부모들을 포함해 실종자 모든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기도도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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