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뒤엔 '점자악보'가 있다

그들 뒤엔 '점자악보'가 있다

[ NGO칼럼 ] NGO칼럼

김미경 관장
2015년 03월 16일(월) 18:49

시각장애인들은 청각이 발달한 까닭에 음악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에서부터 대중가수 레이찰스와 스티비 원더,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까지.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은 청각이 발달해 음악적 요소에 민감했으며, 타고난 실력으로 초견(악보를 보고 바로 연주하는 것)과 즉흥연주를 선보이곤 했다.

이렇듯 음악적 재능을 지녔다 해도 시각장애인이 전문적인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점자악보이다. 글을 모르고 문학을 논할 수 없듯, 악보 없이 음악과 완벽히 소통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음악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 음악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내는 일 모두 점자악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점자악보를 제작하는 음악점역교정사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 세계적으로 음악점역교정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58명의 음악점역교정사가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에서 배출한 인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2009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악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음악 전공자들을 고용했을 당시,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하고 일했던 음악 전공자들에게 직장에서의 기본예절부터 점자와 음악점자, 그리고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모든 교육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사업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점자악보 하나가 없어 예술적인 재능을 아픔으로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당시의 고민과 시행착오는 감사와 기쁨의 열매로 바뀌었다. 현재 복지관 음악점역교정사들은 조이풀중창단에 소속되어 아침 경건회 시간을 은혜로 채우고 있으며, 시각장애인들의 학습방법을 온전히 이해해 그에 맞는 맞춤형 음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직접 만든 음악점자악보는 복지관 홈페이지(www.musicbraille.org)를 통해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어 음악점자의 발달과 통용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사실, 음악 점역은 고난이도의 업무이다. 묵자악보 1장을 점자악보로 제작하면 평균 3장 정도로 늘어나며,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점자악보로 만들기 해서는 숙련된 음악점역교정사가 3주 내내 점역에만 매달려야 하는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음악으로 소통하고 꿈꾸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악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므로. 나아가 꿈을 꾼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수준의 점자악보를 제작, 보급해 대한민국이 음악점자의 요람이 되고,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에서도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브랜드화를 이룰 수 있기를.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김미경 관장 /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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