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에 없는 두 가지 '감사의 성찬'ㆍ'기쁨의 할렐루야'

성금요일 에 없는 두 가지 '감사의 성찬'ㆍ'기쁨의 할렐루야'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
2015년 03월 09일(월) 16:38

만일 일년 중 단 한 번만 성찬성례전을 거행한다면 언제가 좋을까?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은 성금요일 예배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주님의 죽으심을 가장 엄숙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고 또 주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 교회 대부분이 성금요일에는 성찬식을 하지 않는다. 성찬이 없으면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교파들도 1년 365일 중 유일하게 성금요일만은 성찬식을 거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찬성례전이 십자가 위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떡과 포도주가 되신 바로 그 몸과 피를 기념하며 감사하기 때문이다.


간혹 성금요일에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단지 하루 전날 세족목요일 성찬식에서 남은 것들을 전형적인 성찬식순 없이 함께 나누는 것뿐이다. 성찬식을 위해 사용되는 가장 보편적 용어는 '감사'라는 뜻의 헬라어 '유카리스트(Eucharist)'인데, 이것은 성찬식이 그 역사 초기부터 감사와 기쁨의 예전이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성금요일에 성찬식을 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돌아가시던 그 시간만큼은 차마 감사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정서가 반영된 전통이다.


물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속죄능력을 감사하며 성찬식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속죄능력도 십자가에 매달리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더 이상 십자가 위에 없으심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 예배에 대한 대부분의 담론들은 '옳거나(right)' '틀린(wrong)' 것들을 법적으로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적절하고(appropriate)'


'효과적(effective)'인 것인지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금요일 성찬식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고마운 죽음이라도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적절한 예배요소이겠는가?
그래서 심지어 전통적인 성금요일 예배에서는 악기를 비롯한 음악적 요소들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성금요일에 없는 또 하나는, '할렐루야'가 포함된 찬양이다. 사실 이 할렐루야는 사순절 기간 동안 절제되는데, 성금요일에는 더더욱 사용되지 않는다. 기쁨의 찬양인 '할렐루야' 역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주님 앞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이해 때문이다. 한편 할렐루야의 기쁨과 성찬의 감사가 절제됨으로써, 우리는 할렐루야의 힘찬 찬양으로 부활절 새벽을 열며 더 큰 감사로 성찬성례전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성찬과 할렐루야의 이 전략적 '없음'은 더 풍성한 부활절 기쁨을 위해 마련된 하나의 장치와도 같다. 이처럼 예배의 드라마적 구성을 이해한다면 효과적인 예배기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명실 교수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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