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십자가 정거장에서 만나요

<9> 십자가 정거장에서 만나요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
2015년 03월 02일(월) 18:27

정거장이란 단어는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누구에게나 추억 하나 정도는 있을 만한 사랑과 이별의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정거장이 있는데, 이른바 "십자가 정거장(Stations of the Cross)"이다.

정거장이란 표현은 15세기의 한 영국인이 예루살렘의 성 금요일 아침기도회에 참여한 후 사용하였는데, 순례자들이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의 주님의 십자가 여정에 참여하면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지점들에 잠시 멈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예루살렘에서의 이런 순회적 기도회는 4세기말 에게리아의 성지순례 일기에서도 나타날 만큼 기독교 고대의 전통이다. 이 일기는 세족식과 성찬식을 위해 목요일 밤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 새벽까지 철야기도를 하다가, 이른 아침이 되면 감람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의 여정을 함께 따라 걸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정오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 예루살렘에서 성 금요일에 진행되는 비아돌로로사의 한 장면.

이와 거의 유사한 성 금요일 순회적 기도회가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과 세계 교회에 전해지고 있다.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라는 주님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따라 걷는 것인데, 그 길을 걷다가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표시해둔 14개의 주요 지점에서 잠시 멈춰 묵상이나 기도를 하는 것이다.


5세기 서방의 수도사들은 그들의 수도원 안에 그림이나 조각 등을 배열하여 예루살렘의 비아돌로로사를 재현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십자가의 길'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역시 14개의 정거장을 갖고 있었다. 이 십자가의 길은 로마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 등에서 활발히 채택하는 성 금요일 경건 프로그램이며 기타 개신교 교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경건 프로그램이다. 현대의 십자가의 길은 역사적인 14개의 정거장을 그대로 남겨두되,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했던 5개의 처소를 성경적인 장소로 모두 대체하여 보다 성경적인 영성훈련이 되었다.


한편 성 금요일에 어깨 위로 십자가를 지고 교회 주변을 돌며 예수님의 행로를 직접 재현하는 것은 고대 시리아교회의 전통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선조들은 몸을 이동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법을 발전시켜왔다. 우리도 교회의 곳곳을 십자가의 길로 기획하고 멈춰 기도하는 정거장들을 꾸며서, 언어중심의 수동적인 예배나 기도회를 넘어 몸과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다감각적 영성을 체험하는 성 금요일이 되도록 준비해보자. 이 때 함께 혹은 나눠서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경험도 병행할 수 있다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마음을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명실 교수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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