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연합운동을 위한 제언 (5)분명한 목적ㆍ목표 설정하자

교회 연합운동을 위한 제언 (5)분명한 목적ㆍ목표 설정하자

[ 특집 ]

황필규 목사
2015년 02월 10일(화) 15:14

황필규 목사
교회협 인권센터 운영이사

 
'연합운동의 갈등, 교회협 총무선거로 재점화?'란 내용의 기독공보 기사(2014. 12. 6)를 보면 '이렇게 총무 재선을 하고 나면 도대체 누가 행복하며, 교회 일치운동에 어떤 발전이 있느냐. 걱정이 된다'는 한 총대의 발언을 인용한 내용이 나온다. 필자는 이 발언에 공감하면서도 '교회일치 연합운동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므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첫째, 그러기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적을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으로 정해 볼 것을 제안해 본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초대 총무로서 1966년까지 총무직을 수행한 비서트 후프트는 "에큐메니칼 운동 즉,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 선교는 바로 기독교인의 일치를 열망하는 태도와 관심에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맞다고 본다. '태도와 관심'이 바로 시작이고,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트란트 러셀도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행복은 시작된다"고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말하고 있다.

이런 깨달음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공동체에게 말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대선언을 온전히 이해한 데서 나온 발언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교회일치 운동의 목표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태도와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태도와 관심에 대해 WCC 부산 10차 총회는 세 가지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 가치를 제시했다. 그것은 수용(inclusion), 평등(equality), 참여(participation)이다. 한국교회의 일치 연합운동이 이와 같은 목표와 가치를 개인과 공동체 삶의 중심에 놓고 제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새로운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고 한국교회의 신뢰 회복과 행복한 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운동은 불행하게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행한 대선언을 망각한 채, 2000년 전 상황인 '유대인, 자유인, 남자' 대(對) '헬라인, 종, 여자'의 대립 구도를 못 벗어던지고, 대한예수교장로회(PCK)와 그외 교단,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목사와 장로(신도), 이북 출신과 이남 출신,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국내파와 해외파, 갑과 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한국인과 외국인(이주민) 등 수없이 많은 대립 구조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본다. 이런 갈등 구조를 하루 속히 전환하려는 태도와 관심을 보일 때, 한국교회가 지배와 피지배란 죄악의 구조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일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더 이상 배제, 불평등, 소외 속에서,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이 고통스러운 갈등, 폭력적 갈등에 처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행위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만이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임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일이 작금의 상황에서 절실히 요청된다고 본다.

둘째,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적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은 과정(process)을 통해 가능질 수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태도와 관심은 바로 과정 속에서 그 힘이 나오고 또한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머리로만 인식하고 과정 밖에 있다면, 그 모든 에큐메니칼 운동의 소중한 가치는 약해지게 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참여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자연스럽게 요청될 것이다. 일치와 연합운동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간의 연대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역량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실패 또한 공동체의 몫으로 껴안을 수 있기에, 상호 신뢰와 존중을 근거로 한 일치운동이 가능해지고, 여기에 역동성이 생겨나 행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을 위한 5가지 요소가 있는데, 먼저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치를 따르겠다는 공동합의이다. 주요 의사 결정자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고, 공식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당사자 참여와 논의과정이 평화롭고 안전할 수 있는 대화 공간이 요구된다. 힘의 불균형 속에서의 대화(지시적 대화)가 아니라, 신뢰와 평등, 존중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당사자 참여적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문 인력을 키우고, 진행자와 참가자로서 역할을 하게 하고, 그들 상호간의 협력과 지지가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연합기관에서 일하는 총회 파송 실무자와 총회본부, 노회, 관련 기구 실무책임자들 간에 협업을 위한 네트웍 구성이다.

이와함께 총회 차원에서의 홍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큐메니칼 주일 선포, 에큐메니칼 지도와 이슈 포스터 제작 등이다. 그리고 총회가 참여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기구에 총회의 목적과 목표를 실재 적용하려는 의지(태도와 관심)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총회가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는 여러 연합기관들의 실무책임자 상호 간의 비전 이해와 공유를 위한 공식적 대화의 장이 정례화 돼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실질적 서포트 또한 필요하다.

셋째, 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은 당사자 참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과제는 개인을 비롯한 집단, 공동체, 조직 등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지만, 첫 시작은 개인 당사자로부터 가능하다. 즉, 개인의 발전 없이 조직과 공동체가 비전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사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 에큐메니칼 운동에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하려는 사람들을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이 '당사자 참여를 통한 프로젝트 기획과 운영(Stakeholder Participatory Learning and Action)'에 적극 동참할 때,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수 있다. 이는 당사자들이 경험을 통한 배움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세우게 하고, 참여 과정에서 상호이해와 자발적 책임을 가지게 하고, 공유된 사업을 계획, 실행한 후에 사후 평가를 하게 한다. 사후 평가에서는 계획대로 진행된 것에 대해 함께 축하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함께 애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공동체가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이처럼 에큐메니칼 운동의 당사자가 참여하는 협의적 과정을 함께 할 때, 참가자들 개인의 계발이 가능하고, 조직,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 또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지금 필요하고, 그것은 수용, 평등, 참여의 목표와 가치를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과정을 따라 진행할 때 희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스템과 서포트 구축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공유된 목표(행동 실현이 가능한, 참가자 지원이 가능한, 실천이 가능한, 측정이 가능한)를 차근차근 이행해 감으로써 한국교회가 일치와 연합 운동을 통해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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