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부모들과 자녀들'

'엑소더스:부모들과 자녀들'

[ 논단 ] 주간논단

홍지연 박사
2015년 02월 10일(화) 14:54

홍지연 박사
경민대학교 부총장

 
국내 제작 영화들의 진격에 맥을 못추고 있는 영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을 관람했다. 지금까지 성경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만 이 영화는 신의 영역에 대한 묘사보다 인간의 철학적 고뇌들을 담고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또 하나 새로운 점은 메신저(messenger)의 등장이었다.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구성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믿는 가정에서 자녀로 인해 고민과 걱정이 많은 부모들과 대면하고 상담을 할 때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호소는 '하나님의 뜻이 뭔지 모르겠다'이다. 교육학적 이론과 수많은 상담 사례와 현장 경험을 토대로 조언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그 조언이 과연 하나님 뜻에 합당한가'라는 의문 때문에 확신으로 답하기는 무척 망설여진다. 그러나 교육열과 입시지옥의 현실이 빚어내는 한국교육의 음울하고 깊기만 한 블랙홀에서라도 영화에서처럼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어떤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섭리에 합당하다고 확언해주는 메신저만 있다면 자녀 교육에 걱정이 없을 것 같다.

'내 자신이 그런 메신저인가?'라는 황당하지만 당돌한 질문을 해본다.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하기는 민망하다. 에이리언, 델마와 루이스, 글래디에이터와 같은 굵직하고 한 획을 명확하게 내리긋는 작품을 제작한 리들리 스콧이 왜 어린아이 메신저를 내세웠을까? 영화 관람 후 내 머릿 속을 점령한 질문이었다. 결론은 '네 까짖게 뭘 알겠어?'라고 무시하고 열외 시키기 가장 쉬운 사람 중에서도 제일 여린 약자가 어린아이여서일 확률이 높다.

자녀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사실은 자녀의 인생이고, 그 자녀는 잠시 동안 부모가 맡아 양육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객체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녀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자녀의 생각이나 의견을 시쳇말로 '개무시'하는 부모들이다. 부모 눈앞에서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는 자녀의 미래를 위한, 자녀의 뜻에 합당한 선택인가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십여 년이 지난 요즘 매일 접하는 사건과 사고들은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있는지 확인시켜주는 것들뿐이다. 사랑받아야할 부모에게서 학대받고, 뛰놀야할 어린이집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배움의 터전인 학교에서는 왕따, 폭력, 자살이 난무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운이 좋은 청소년들은 미래를 담보삼아 학원순례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이야말로 또 한 번의 엑소더스가 절실한 땅이다. 광풍과 해일이 몰아치는 시퍼런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자녀들을 위해 과감한 탈출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세 같은 부모일 필요는 없겠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같은 부모가 더 필요한 시대이다. 메신저 역할을 부모들이 잘 감당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메신저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이다. 좋은 부모 되기 위해 내공을 쌓는 일은 말로나 이론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와 묵상을 생활화하고 성경말씀을 실천하고자 애를 쓰며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을 흠모하기 위해 몸부리치는 부모라면 분명 좋은 부모이다. 좋은 부모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한다. 좋은 부모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옳게 해석하고 파악하여 부모 얼굴을 세우고, 지위를 폼나게 하는 결정이 아니라 진정 자녀를 위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2015년에는 자녀들을 위한 엑소더스를 감행하기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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