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안 보여도 커피 향은 보입니다"

"커피는 안 보여도 커피 향은 보입니다"

[ NGO칼럼 ] NGO칼럼

김미경 관장
2015년 02월 09일(월) 20:08

장애인들에게 직업은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신체적인 제약 때문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애인들이 일터로 뛰어든다. 실력을 쌓고 성공하기 위해 이들은 비장애인들보다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사회 안에 뿌리박힌 차별, 편견과도 부지런히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복지관은 1999년 개관 때부터 속기사, 텔레마케터 등 시각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왔다. 일례로, 속기사를 양성해 시각장애인들을 국회로 취업시킨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 부딪혔다. 텔레마케터라는 직업군에도 도전했지만 엑셀로 만들어진 자료를 빨리 파악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에 시각장애인들은 업무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최근 도전해 성공한 직업군이 있다. 바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이다. 2008년, 복지관에서는 중도 실명한 여성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양성훈련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00여 명의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를 배출했고, 4개의 '카페모아' 지점(봉천점, 숙명여대점, 관악구청점, 실로암안과병원점)을 열어 10명이 넘는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바리스타는 뜨거운 열을 다루는 직업이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을 선뜻 교육생으로 받아주는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관 담당자들은 이들을 교육시켜줄 곳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 결과 방배동의 한 커피문화원에서 의미 있는 첫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바리스타 교육에서 촉각과 청각을 최대한 많이 활용했다. 재료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컵을 눈에 가까이 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이 촉각과 청각을 의존해 이뤄졌다. 때문에 각각의 과정이 손과 귀에 익숙해질 때까지 수도 없이 연습해야 했다. 예를 들면, 스팀노즐(우유를 데울 때 사용하는 커피머신의 한 부분)에서 나오는 증기와 우유 표면이 마찰할 때 '칙' 소리가 나는 데 이 소리가 두 번 나면 카페라떼, 다섯 번 나면 카푸치노를 만들기에 적당하다는 것을 체득할 정도였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커피는 안 보이지만 커피 향은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결과 이제는 '칙' 소리만 들어도 커피가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되었다.

이렇듯 어렵게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했지만, 정작 이들이 일 할 곳은 너무 부족하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북 카페나 커피숍에도 수차례 찾아갔지만,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하는 곳이 너무 많았다.

속상한 마음이 앞선다. 장애인들에게는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뿐 아니라, 함께 일하며 성도들을 기쁘게 섬길 수 있는 기회 역시 필요하다.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자립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항상 이웃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도 성도들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봉사를 하며 필요를 채워주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올 해에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한국교회 안에 시각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할 수 있는 카페모아 5호점, 6호점이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