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연합운동을 위한 제언 (1)틀 바꿔도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교회 연합운동을 위한 제언 (1)틀 바꿔도 가치는 버릴 수 없다

[ 특집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1월 27일(화) 15:57

김영철 목사
생명평화마당 실행위원장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제10회 세계교회협의회(WCC)총회와 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총무 인선 사태를 돌아보면, 현재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생명, 평화, 정의라는 우리 시대의 절실한 과제를 교회적으로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세계 에큐메니칼운동의 한마당 WCC총회는 시작부터 이른바 '1.13. 공동선언문 사태'로 논란에 휩싸이더니, 준비기간 내내 구설수가 많았고, 대회 중에도 반대시위까지 겹치는 등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그러기에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역량을 보여주고 한국교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세계교회와 내용적으로 연대하는 자리가 되기에는 그야말로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WCC의 한계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어쩌면 에큐메니칼운동의 현실적 어려움과 당면한 과제가 단순히 한국적 상황만은 아님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올해 NCC 총무 인선 과정에서 나타난 양상은 그야말로 한국 에큐메니칼운동의 현 단계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일치와 협력이라는 에큐메니칼 정신은 실종되고 교단 간의 세력 대결과 자리다툼으로 얼룩져 그동안 정치권이나 세속 사회를 향해 자리 욕심이나 세력 다툼에 대해 비판을 해 온 교회의 입장이 무안해졌다.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하고 탈성장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던져주어야 할 에큐메니칼운동이 한편으로는 무기력과 정체에 빠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진영논리와 기득권주의가 팽배한 이중적 위기에 처해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에큐메니칼운동의 위기에 있어 본교단도 예외일 수 없다. 어쩌면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1.13공동선언문 사태'나 올해의 NCC 총무 인선 사태에서 본 교단은 문제의 중심부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선언문을 주도한 것이나 NCC 총무 경선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바로 본교단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본교단은 에큐메니칼운동에 있어 많은 참여와 헌신을 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책임있는 역할을 잘 감당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 스스로는 '장자교단'임을 내세워 은근히 책임의식을 강조하지만 다른 교단에서는 이를 '대형교단'의 자기과시로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단적으로 이번에 NCC 총무 인선과정을 돌아보면 짚어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고 나중에는 법적 대응까지 했지만 다른 교단들의 호응이나 에큐메니칼 인사들의 지지는 받아내지 못했다. 본교단이 에큐메니칼운동에 실제로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헌신하면서도 재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번 사태를 보면 후보 선정이나 타이밍을 놓친 것 등의 내부의 문제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본교단의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진정성'이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 진정으로 교회 일치와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에큐메니칼 사역에 우리 교단이 책임있게 헌신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진정성의 문제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교단이 교회 연합조직에 이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본 교단은 과거에는 NCC와 한기총에, 현재는 NCC와 한국교회연합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면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개의 교회 연합조직에 참여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더 큰 교회 연합운동에 헌신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보면 이는 교회 연합운동에서도 양다리를 걸치는 이중 플레이로 비춰진다. 필자는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형태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대결에 교회가 중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중간자적 역할'이 어떤 사안이나 현안에 대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정당화하거나 어느 조직에도 책임있는 주체로 나서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무책임한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한번도 교회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말하고 책임있게 참여 하지 않다가 교단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발언 수위를 높이게 된다면 누가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이번 NCC사태에서도 지난해 11월 18일 교단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본교단도 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회개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NCCK를 새롭게 섬길 것을 촉구하며 우리들 스스로 어제와 오늘의 부끄러운 문제들을 성실하게 고쳐나갈 것입니다"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과 연관하여 필자가 느끼는 또 다른 문제는 본교단의 현장 에큐메니칼운동 역량과 교단 차원의 에큐메니칼 정치 역량과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에큐메니칼 조직의 책임있는 실행위원이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문 실정인데, 그러다 보니 에큐메니칼운동의 대표성과 활동성의 괴리가 크다. 이것은 다시 본 교단에게 제기되는 에큐메니칼운동 진정성의 문제로 연결되고 이것은 또한 실제로는 가장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에큐메니칼운동에 투여하고도 제대로 책임있는 자리나 역할을 견인하지 못하는 것과 연결된다. 그러기에 에큐메니칼 조직에 참여하는 총대나 위원들을 국회의 비례대표나 직능대표 개념으로 현장 에큐메니칼운동 역량들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새 술은 새로운 시대의 에큐메니칼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말한다. 오늘의 시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놓고 대립하던 시대를 지나 정보화와 세계화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탈성장주의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체 교회와 에큐메니칼운동의 방향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교회의 패러다임도 전환되어야 하는데, 이른바 대형교회 지향의 성장주의 목회에서 작은교회 지향의 공동체 목회로, 개교회 중심의 목회에서 마을 목회와 지역 선교교회로, 획일화되고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다양하고 창조적인 스타일로 변화되어야 한다. 본교단이 추진하고 있는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운동 10년(2012-2022)'은 이러한 교회의 목회적 전환을 '지역 에큐메니즘(local ecumenism)에 기초한 생명망목회(web-of-life ministry)'로 정리하고 있다. 에큐메니칼운동의 패러다임이나 조직적 변화 또한 바로 이러한 전환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중앙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기구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현 세대 중심에서 새로운 세대 중심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 다가온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개혁적 에큐메니칼운동의 의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에큐메니칼 대화의 자리'가 필요하다. 교단을 넘어, 지역을 넘어, 세대를 넘어, 성별을 넘어, 직제를 넘어 함께 나누는 에큐메니칼 대화의 마당의 자리가 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러한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는 과연 무엇일까? '전면 개혁된 NCC'일까, 교회연합일까, 아니면 제3의 조직체계일까? 이와 연관하여 약간은 엉뚱할 수 있지만 최근의 야당 정치세력의 재편 요구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새정치연합이란 거대 야당은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진보정당들은 지지부진하고 해산당하기도 한 형편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교회에도 이러한 요구가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그럼에도불구하고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것은 '전면 개혁된 NCC'일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과연 전면 개혁된 NCC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지난 12월 19일 열린 본교단 '2014 에큐메니칼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적극적인 제안들을 보면 일말의 희망을 두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의 글의 제목을 약간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에큐메니칼운동, 틀을 수선하여 가치를 지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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