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교육, 베푼 교육

받은 교육, 베푼 교육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장순애 교수
2015년 01월 19일(월) 15:39

양가감정(ambivalence)이란 동일 대상에 대해서 정반대의 상대적인 감정을 갖는 정신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내게 있어 마가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헬라어식 이름은 마가, 히브리식 이름은 요한, '주께서 이끌어 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찾아갔던, 여종이 있고, 대문이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을 정도로 큰 집 주인의 아들(행12:12-17). 1차 선교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가 두었던 수행원(행13:5), 그러나 버가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린 사람(행13:13), 2차 선교여행 직전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고 갈라서게 만든 장본인(행15:39), 그 결과 바울을 '일 중심의 사람'으로, 바나바를 '관계중심의 사람'으로 분류하게 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람.

나는 한편으로는 선교여행 도중,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는 마가요한(행13:13)이 쉽게 이해가 된다. 나도 마음이 힘들다고 혹은 몸이 힘들다고, 호기롭게 시작한 일을 중도에 포기한 적이 꽤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회학교에서 나는 그러한 마가요한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 바울(행15:38)이 되어, 나도 모르게 마가요한 같은 이들을 교육현장에서 강하게 배척하곤 했다. 이해는 되지만 동료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의 이 이중성.

그러나 실패한 사람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매우 다르다. 냉정한 누가는 도중에 '떠난' 마가요한의 이 행동을,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눅8:13) 돌밭의 상태와 같은 헬라어단어, '아피스탄타이'로 표현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배반자 마가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신다.(행15:39) 바나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교육'의 결과, 마가는 어느새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딤후4:11), '동역자'(몬24)이며,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미리 명을 내려둘만한 사람(골 4:10)으로 변화되어 있다.

마가의 반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가를 최초의 복음서를 쓰는 저자로도 사용하셨다. 이것 역시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교육'을 통해 일어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마가는 생전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내 아들 마가'(벧전5:13)라고 불렀던 베드로의 설교를 로마인들에게 통역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였다고 한다. 결국 마가복음은 베드로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의 기록인 셈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도대체 왜 하필이면 마가를 통역자로 받아들였을까? '도중에 떠난 자'로서, 어쩌면 선교사들 사이에서 '배반자'로 소문난 마가요한을 보면서, 혹시 자신의 실패와 배반이 기억났던 것일까? 만약 그것이 이유의 전부라면, 베드로도 나처럼 때때로 양가감정에 시달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시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교육'(요21장)을 절절히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체험이 베드로로 하여금 양감감정에 시달리는 대신, 자신이 받은 예수님의 교육방법-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며, 다시 사명 주시는-, 그 방법 그대로 마가에게 베풀고 교육한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까지도 교육의 재료로 삼는 놀라운 교육자이시다.

장순애 교수/영남신대 기독교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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