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와 인간화

복음화와 인간화

[ 논단 ]

최갑도 목사
2015년 01월 08일(목) 11:23

세계선교의 동기와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 건설이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현대 선교의 접근은 동일하지 않다. 대체로 크게 나누면 하나는 복음주의 입장이고 둘째는 에큐메니칼 입장이다. 이들은 다같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목표로 하면서도 선교의 개념과 방법을 달리 한다. 즉 복음주의에서는 복음화에 중점을 두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교 방향은 인간화에 초점을 둔다.

현대 선교에 있어서 이런 두 라인의 선교 전략은 자기 나름대로 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으며, 신학적인 논리도 있다. 다만 다른 주장 때문에 서로 대립하고 서로 상대방을 용납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두 주장의 상반된 요소와 그 내용이 다른점이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첫째로 주님의 지상명령이신 선교의 대위임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설명하면 복음주의는 마태복음 28장 18~19절에 근거하여 선교의 대위임을 복음전도의 지역적 확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선교의 과제로 삼는다. 그러나 에큐메니칼의 입장은 이 대위임을 인간의 삶에 직결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관심을 가리우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즉 복음주의적 입장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세속생활의 이중성 혹은 이질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에큐메니칼은 세속생활은 복음의 구체적인 결실의 자리요, 집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와 세계를 동심원에서 생각하려한다.

둘째는 선교의 궁극적이 목표에 관한 해석의 차이다. 복음주의 입장은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존귀와 찬양이 선교의 목표이다. 그러나 에큐메니칼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람직한 인간을 만들고, 바람직한 삶을 구현하는데 있다. 전자는 하나님의 주체성을 강조한데 반하여 후자는 인간의 주체성을 중요시했다.

셋째로 진리의 절대성 문제에 대한 견해차이다.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진리만이 절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선교의 내용이고, 토대이다. 타 종교에도 철학적인 진리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구원의 길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입장에서는 모든 종교의 진리의 보편성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 이외에도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자신이 만민의 구주이심을 계시한다고 믿는다. 이런 주장에 의하면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구원의 절대적 은혜가 약해지기 쉽다.

넷째로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위치는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의 확장을 실현하는 것이며, 교회는 세계 속에 있어서 빛과 소금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입장에서는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인 구조로 분리하시는 것을 반대하고, 교회를 세상의 한 부분으로 본다. 그리고 선교를 교회의 하부 구조로 생각하고, 교회의 한 기능으로 여겼던 과거의 생각을 지향하고 선교를 위한 교회 즉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구원의 공동체로 본다.

다섯째로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복음주의 입장은 선교를 예수 그리스도 부활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난다고 본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입장은 막연한 종말론적 대망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파악하는 것이다. 고로 선교는 미래에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 선포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선포라고 한다.

우리는 위에서 복음화와 인간화 선교 전략의 현격한 차이를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선교 전략의 대립보다 양극화의 해소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복음화만을 강조할 때 역사를 외면하게 되고, 인간화만을 강조하면 복음의 진리가 힘을 잃는다. 고로 복음화와 인간화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둘을 종합함으로 선교는 바른 전략을 찾게 될 것이다. 케리그마(말씀의 선포)와 디아코니아(봉사)를 분리시킬 때 선교의 본질은 변하고 만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화가 불가능하듯이 바람직한 인간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복음화도 있을 수 없다. 선포와 봉사는 선교 사업에 있어서 나눌 수 없는 불가분리의 요소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가의 우선순위가 문제일 뿐이다. 복음주의는 선포가 먼저요, 봉사는 선포의 결과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폴 틸리히는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태라고 주장한 것은 의미 있는 표현이라고 본다.

 최갑도목사 / 성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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