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반사(班師)가 필요한 이유

교회학교 반사(班師)가 필요한 이유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장순애 교수
2014년 12월 30일(화) 16:23

1970년대 말, 드디어 '보조'라는 딱지를 떼고 나는 교회학교의 한 반을 맡은 명실상부한 반사(班師)가 되었다. 비로소 진짜 교사가 된 것 같았고 야무지게 다짐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성경 한번 제대로 가르쳐 보리라!'

공과를 열심히 준비했다.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했다. 분반공부를 마치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기도도 드렸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반 친구들에게 말씀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뿌려진 이 씨앗이 30배, 60배, 100배 열매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여러 해 동안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야, 장 반사(班師)야, 너는 왜 분반공부시간에 그렇게 뿌리기만 하느냐? 내가 반사인 너에게 맡긴 일이 정녕 '씨앗을 뿌리는 일'뿐이더냐?" 나는 얼른 마태복음 13장을 펼쳤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하나님. 저는 성경에 있는대로,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는데요?" 하나님께서 되물으셨다. "그래. 성경에서 교회학교 반사인 네가 '씨앗을 뿌리는 자'라고만 말하더냐?"

아뿔사! 그렇지 않았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네가 바로 씨 뿌리는 자'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우선 '너는 어떤 마음밭이냐?'고 묻고 계셨다. 그리곤 특별히 반사(班師)인 나에게 '분반공부 시간에 말씀을 듣는 반 아이들의 마음밭에 주목하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세상에... 그런데도 나는 반사를 시작한 이래 몇년 동안 말씀을 듣는 우리 반 아이들의 마음밭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내가' 씨앗을 뿌렸으니 주님께서 '나'에게 100배의 열매를 주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아이들이 열매를 맺는지 못 맺는지, 못 맺는다면 그들을 위해 반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을 판단하는 자가 되어있었다.  '음~ 너는 '길가'로구나, 씨앗이 벌써 날아간 걸 보니', '너는 '돌밭'? 으이구~ 너같이 거친 마음에 말씀의 뿌리가 내릴리 없지. 암~', '헉! 그렇게 염려가 많고 유혹에 약하니 어느 세월에 열매가 열리겠니~'. 나는 그 열매 없음을 순전히 '아이들의 마음밭' 탓으로만 돌리는 무책임한 교사였다.

그 시절의 나처럼 '100배의 열매'를 달라고 기도했는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기 전에 우선 반사인 내가 만나야 할 마음밭들을 보라 하신다. 그 중에서도 '좋은 밭'이 아니어서, '좋은 밭'이 못되어서, 뿌려진 씨앗의 본전도 못 건지는 마음밭들을 보라 하신다. 원하지 않았지만 자꾸 밟혀서 '길가'같이 뺀질뺀질해질 수밖에 없었던 마음, 피할 수 없는 상처들이 뭉쳐서 '돌밭'처럼 거칠어지고 응어리진 마음, 보는 것마다 유혹이요 고민거리인 '가시떨기 밭' 같은 마음, 씨앗을 뿌리기 전에 그 씨앗이 진정 소중한 생명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그 밭들을 붙들고 함께 울라하신다. 그 밭들의 아픔과 흔들림을 부둥켜안고 십자가의 보혈에 잠기라, 잠기라 하신다.

씨만 뿌려도 100배의 열매 맺을 '좋은 밭'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씨앗의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잃을 수도 있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밭' 같은 아이들 때문에 교회학교에 반사(班師)가 필요하다.

장순애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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