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산

소이산

[ NGO칼럼 ] NGO칼럼

정지석 목사
2014년 12월 01일(월) 19:08

오늘도 소이산을 오른다. 소이산에 오르면 철원 들판과 평강고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광활하게 펼쳐진 땅을 가로지르는 검은 수풀 띠는 비무장지대(DMZ)이다. 그게 DMZ라고 알고 보니 그런가보다 하지 남북한 땅은 이어져 있다.

이곳 소이산을 오른지 이제 3년이 지나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엊그제 같다. 나이 오십을 지나면서 후반전 인생은 허무 속에 부서뜨리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께 매달렸다. 후회없을 삶의 길을 보여달라고, 보여주시면 무조건 복종하여 따르겠다고. 그리고 얻은 길이었다. 남북한 평화통일.

칠십년간 부르다 지쳐버린 노래가락, 닳아빠진 정치 구호로 전락해 버린 그것이 내 후반전 인생을 바칠 길이라니, 정말입니까? 반년을 다시 묻고 또 물었다. 대답은 여전했다. '철원으로 가라'. 낯선 땅이었다. 그러나 두려움 없는 길이었다. 가슴은 설렘으로 기대감으로 팽팽한 풍선처럼 부풀었다. 칠십오세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믿음은 현실 앞에 무력했다. 철원 동송 버스 터미널은  현실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막막했다. 당장 어디로 가야하나, 무엇을 해야하나, '길을 주시면 무조건 복종하겠습니다' 수없이 다짐하고 또 결단했던 가슴은 스물스물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주님, 남북한 평화통일이 목사가 전 생을 바쳐서 할 일 입니까? 그건 대통령이나 통일부 장관이 해야하는 일 아닙니까?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심방하는 것이 목사의 할 일 아닙니까?' 철원 들판에 서서 나는 기도를 바꾸고 있었다. '주님, 이 일을 꼭 철원에서만 해야하나요? 서울에서 목회하면서 같이하면 안될까요?' 후퇴하는 기도였다. 언제 통일이 온다고 철원에서 그걸 준비하려한단 말인가. 내 마음은 자꾸 뒤로 밀렸다. 그 동안의 오랜 기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동송행 버스를 탈 때의 충만했던 마음, 감격은 밑으로 눌렸다. 막막함은 철원에 남을 수도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노아는 어떻게 했을까? 갑자기 노아가 떠올랐다. 청청하늘 아래 배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노아는 어떻게 했나. 주저함은 없었을까? 그의 주저함이 나를 위로할 것 같았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했고 노아는 그대로 준행했다"(창 6:22). 노아의 대답과 행동은 단순명료했다.

지금 3년전 그 날을 돌아본다. 노아의 단순한 믿음이 나를 구원했다. 철원에 이사한 후 나는 매일 소이산을 오른다. 소이산에 오르면 광활하게 펼쳐진 남북한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내가 이 민족을 사랑한다. 지석아, 네가 내 종이 아니냐".

정지석 목사 /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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