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에 물 붓기?

밑빠진 독에 물 붓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16>

장순애 교수
2014년 11월 27일(목) 14:02

지난 한 주간 살인적인 스케쥴이었다. 주간 내내 학교업무로 바쁘다가, 토요일엔 서울의 학회에 다녀왔다. 서울서 개인적인 용무도 몇 가지 처리하고 기차에 몸을 싣자 맥이 풀렸다. 그러나 대구에 내려도 집에 갈 수 없었고 예배 준비를 위해 2학년 학생들과 기도회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교회로 향했다. 나는 '고등부 설교쌤'이니까. 기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떼우면서 몇주 동안 계속 맴돌던 고민을 다시 곱씹었다. '내년에도 이 고등부 사역을 계속 해야할까?'

2년 전 이맘때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우리 교회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교회들처럼 '중고등부를 따로 운영할 것인가? 합칠 것인가?'를 의논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적은 학생을 위해 모셔야 할 교역자 사례비가 문제라면 내가 몸으로 메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원봉사 고등부 설교쌤'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랜만의 교회학교 사역. 시간이 바쁘고, 몸이 힘드는거야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몸보다 더 힘든 건 너무 자주 찾아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자괴감이었다. 최선을 다해 고등부를 섬긴다고 섬겼지만 괄목할만한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1명이었던 1학년 여학생이 올해 2학년이 될 때는 9명으로 늘어났지만,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출석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았고, 올해 고등부에 새로 들어온 1학년 신입생들은 11시에 예배 드리던 중등부와 달리 9시에 드리는 고등부 예배시간에 적응을 못 해 지각을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 축구가 좋아서 고등부로 모여들었던 1학년 남학생들은 올핸 축구활동이 유명무실해지자 다시 원래 있던 아이들만 달랑 남겨진 2학년 남학생 반이 되었다. 그래도 복음을 들었던 아이들이니 그대로 세상으로 흘려보낼 수 없어서 일 년 내내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간절히 기도하고 문자로, 카톡으로, 전화로, 학교앞 치킨집에서 번개팅으로 최선을 다해 애썼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그 아이들을 전도했던 아이가 미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지경이 되었다.

피곤해서일까? 내려오는 내내 2년간의 노력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이제는 더 이상 내 능력밖이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기차가 동대구역에 도착했고 약속된 기도회를 위해 교회로 달려갔다. 그런데 고등부실에서 미리 모여 찬양연습을 하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성령께서 내 눈에서 부정적 관점의 비늘을 벗기셨다. 그리곤 그동안의 고등부 사역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니라 '콩나물 시루에 물주기' 였음을 깨닫게 하셨다.

내가 부은 물들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지만 매일매일 조바심내며 확인하려들 때는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허사인듯했지만, 그러나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성큼 자라나 있었던 것이다. 콩나물 시루에 부은 물들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아도 그 물 먹고 콩나물이 쑥쑥 자라나는 것처럼. 뿐만 아니다.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장순애. 지금의 너 역시 누군가가 포기하지않고 '콩나물 시루에 물주기' 헌신을 한 결과 이만큼이라도 자란 거란다."

장순애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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